‘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대전환’…위기인가? 기회인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대전환’…위기인가? 기회인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1.02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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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가을을 매우 사랑하지만 ‘계절의 여왕’ 봄은 또 다른 관점에서 좋아한다. 동토의 겨울을 꿋꿋이 이겨네고는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새 생명의 잉태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정확히 6년 전, 필자는 인천을 거쳐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떠났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40차 총회에 정부대표단 자문위원 자격으로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 총회의 가장 큰 목적은 기후변화 평가 5차 보고서 중 종합보고서의 정책결정권자를 위한 요약보고서 승인이었다. 이때는 참가국 모두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승인이 이루어진다. 회의는 의장이 보고서의 모든 문장을 한 줄씩 읽어가며 150여개 참가국의 의견을 물어보고 이견이 없으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 때문에 회의가 예정된 시간 안에 끝나는 일은 거의 없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회의는 이르면 밤 12시, 늦으면 다음날 새벽 3~5시에야 끝나고, 그날 오전 10시에 다시 시작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회의가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협상이 승인된 보고서에 근거하여 진행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보고서 내용을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부정하는 것은 외교적 일관성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승인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치열하다. 특히, 국가적 이익이 걸린 주요 산유국이나 중국과 같은 화석연료 대규모 사용 국가들은 보고서 승인 과정에 국가의 명운을 걸고 임한다.

40차 총회를 떠올린 이유는 ‘Transformation’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우리말로는 ‘전환‘이란 뜻이다. 보고서 개요에는 ’사회 전 분야의 전환‘이 언급되었다. 이 단어를 보고서에 수록하고 나면 기후변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까지 기대어 온 모든 시스템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사회시스템으로 전환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 단어의 사용 여부를 두고 주요 참가국들 사이에는 회의기간 내내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경고와 주장이 많았음에도, ‘전환’이 화두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세계는 달라지고 있다. 기후변화, 아니 기후위기의 문제가 더 이상 학자들이나 기후운동가들만의 화두가 아니라, 많은 대중들의 화두로 등장한 것이다. 기후변화의 속도가 예상보다 너무 빠르고, 그 피해가 광범위한 지역에서 대규모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으로, 이제야 비로소 기후위기를 체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총회 참가국들은 기후위기의 책임이 가장 큰 유럽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사회 대전환을 주제로 활발하게 논의한 다음 ‘그린딜’ 정책을 발표했다. 그 이후 미국의 민주당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그린뉴딜’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우리나라 역시 한국판 뉴딜의 한 축으로 ‘그린뉴딜’을 제시하고, 구체적 사업들을 하나씩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그린뉴딜’은 많은 비판을 받았고, 아직까지도 받고 있다. 완성형이 아니다 보니 문제점들이 여럿 드러난 탓이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목표의 부재’였다. 탈탄소사회로 전환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100%’를 언제까지 달성하고, ‘탄소중립(net-zero)’을 언제까지 이룰 것인지 목표가 없었다. 그 결과 전략이 있을 수 없었고, 전략이 없으니 체계적 정책과 사업이 수립·이행되지 못하는 문제들이 나타났다.

지난 7월 환경부와 지방정부 사이에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위한 ‘탄소중립 지방정부 실천연대’ 업무협약이 체결됐지만 국가 목표의 부재는 여전했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예산 관련 시정연설에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국가 목표가 이때 비로소 발표된 것이다. 그러나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구체적 방안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 갈 길이 멀지만 결국에는 가야할 길이다.

‘탄소중립’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이 부분은 다른 기고문에서 다루기로 한다.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탈탄소사회로 전환하는 데는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과 희생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의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체계를 재생에너지 기반 에너지체계로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거·교통·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의 ‘전환’이 필요하다. 울산의 산업구조를 생각해보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대전환이 울산으로서는 큰 위기. 큰 시련이 닥칠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탈탄소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올 수 있는 충격들을 미리 예상하고 제때 대비한다면 위기는 이내 커다란 기회로 바뀔 것이다.

우리는 시련이 가득 찬 겨울 문턱에서 가을을 보내고 있다. 많은 지혜를 모으고,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닥쳐올 위기에 대비한다면 마침내 겨울을 이겨내고 아름답고 찬란한 새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마영일 울산연구원 시민행복연구실 / 환경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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