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세계1위 현대중공업의 품격?
조선업 세계1위 현대중공업의 품격?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1.0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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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유명한 속담이 있다. 사전적 의미는 ‘먼지같이 작은 티끌이 모이면 크고 높은 태산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작은 것이라도 모이면 큰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보통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한푼 두푼을 모으다 보면 정말 큰돈이 되어 있다거나 아주 작은 노력들이 모이면 희망이 되고 결국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티끌이 부정적인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작은 스트레스들이 오랜 기간 쌓이고 쌓여 병이 되기도 하고, 갚지 못한 대출이자가 쌓이면 재산을 전부 날릴 수도 있다.

최근 필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울산동부지사에서 일일 명예지사장 체험을 했다. 이날 공단 관계자들과 어려운 동구지역 경제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는데 현대중공업 협력업체의 상황이 딱 ‘티끌 모아 태산’이었다. 긍정이 아닌 부정적인 의미로 말이다.

조선업 위기가 시작된 다음해인 2016년부터 조선업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지원이 시작됐다.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울산 동구를 비롯한 조선업체가 있는 도시에 대한 고용위기지역 지정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지원 속에는 협력업체를 위한 ‘4대 보험 체납처분 유예’ 조치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현재 납부 유예가 된 4대 보험료는 협력업체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커졌다. 조선업이 부활해 협력업체의 사정이 나아져야 연체된 보험료를 갚을 수 있는데 조선업 경기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터졌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해 9월 현재 동구지역 조선업 지원업종 사업장의 건강보험료 체납액은 419억원이다. 동구지역 전체 직장 체납금액 511억원의 82%를 차지한다. 사업장별 체납금액은 적게는 10억원 정도에서 많게는 30억원 가량이다.

문제는 체납처분 유예 조치가 올해 끝난다는 점이다. 협력업체들은 자금 사정이 열악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현재 체납된 건강보험료는 사업장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의 규모다. 부동산 등 별도의 자산을 가진 협력업체는 거의 없어 만약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세금 징수에 들어간다면 원청인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받는 기성금(공사대금) 압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조선업 위기가 현재진행형인 만큼 정부는 체납처분 유예 조치를 연장하거나 협력업체의 체납 보험료를 대납하고 추후 분납 등을 통해 갚아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체납처분 유예와 같은 간접적인 지원이 아니라 하청업체들을 살릴 수 있는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추가로 내놓아야 한다.

아울러 현대중공업은 이 사태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기성금 현실화’에 조속히 나서야 한다. 수백억원의 건강보험료 체납이 이뤄진 것은 협력업체들이 현대중공업에서 받는 기성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보험료까지 납부하지 못할 수준의 기성금으로 어떻게 사업장을 운영하라는 것인지 현대중공업에 되묻고 싶다.

최근 울산지방법원은 한 하청업체가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납품 품목이나 각 하청업체의 경영상황 등에 차이가 있는데도 현대중공업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일률적으로 단가를 결정하는 것이 부당하다’며 하청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저가 수주에 따른 고통 분담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협력업체의 기성금을 삭감한 현대중공업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다.

조선업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을 가진 현대중공업은 그에 맞는 품격이 필요하다. 힘들고 위험한 일들을 도맡아 하고 있는 협력업체들이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현대중공업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는가? 부족한 기성금으로 인한 임금체불 문제는 몇 년째 계속되고 있고, 하청업체 대표들이 기성금을 수령하지 않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현대중공업 담벼락에는 ‘하청노동자 임금은 원청이 책임져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있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다.

홍유준 울산 동구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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