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산책
늦가을의 산책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0.2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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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화창한 늦가을 날씨가 주말 나들이를 재촉했다. 10월 24일이면 ‘유엔의 날’(United Nations Day)이기도 해서 오랜만에 부산 고향동네에서 가까운 ‘유엔 기념공원’을 찾을까 하다가 이내 접기로 했다. 두 차례 태풍(9호·10호)이 내습했을 때 쑥대밭이 돼버린 태화강 국가정원 십리대숲의 안부가 더 궁금한 탓이었다.

점심나절에 들른 만추(晩秋)의 국가정원은 시민들의 나들이 천국. 샛노란 국화꽃밭 사이에서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상추객(賞秋客)들부터 ‘2m 거리’를 애써 지켜가며 텐트촌을 뒤덮어버린 가족단위 나들이객들까지…. 이 모두 방역당국의 거리두기 완화가 가져다준 또 하나의 축복일까. 하지만 잡념을 접고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로 했다.

한 달 보름 만에 다시 찾은 중구 쪽 십리대숲. 겉보기에는 아무 일 없었던 듯 멀쩡했다. 그 사이 손을 많이도 보았나? 그러나 그것도 잠시. 대숲 속은 여전히 상처투성이였다. 더러는 휘어지거나 꺾이고, 더러는 비스듬히 또는 수평으로 드러눕고…. 아직 치유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이유를 알만한 안내판 두 개가 시야에 잡혔다. “십리대숲의 건강성 회복을 위하여 조사 및 관찰 중입니다. -피해 대나무는 금년 내 제거할 예정임.” “내년 건강한 죽순을 위해 뿌리생장 휴면기(11~2월) 중 피해대나무 제거 예정입니다.” 모두 ‘태화강 국가정원’이란 꼬리표를 달았다. 부서명을 감추고 싶었던 것일까.

나중에 안 얘기지만 울산시는 2억4천만원이 들어가는 ‘2020년 십리대숲 태풍피해 복구사업’ 입찰공고를 최근에 냈다. 10ha에 이르는 십리대숲 대나무 가운데 강풍으로 넘어지거나 부러진 대나무가 28% 정도라니, 그나마 다행일까? 안내판 글귀의 뜻을 누군가가 귀띔해주었다. “쓰러졌다고 대나무를 베어버리면 뿌리 생장에 지장이 생겨 내년에 올라올 죽순까지 영향을 받는 모양입디다.”

점심요기를 하러 가던 길에 전날 들었던 전시회 소식이 떠올라 발길을 그리로 돌렸다. 전시장 천막 글씨를 보니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 1주년 기념 야생화 전시회’다. 분재(盆栽) 몇 십 개가 전부다 싶어 찬찬히 감상하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흥미와 혼란이 동시에 찾아왔다. 표기방식이 문제였다.

모양과 크기가 개다래를 닮았다는 주홍색 애기감나무의 이름이 ‘노아시’(老鴉枾)와 ‘마디감’ 두 가지인 것은 그런대로 수긍이 갔다. 하지만 코끼리 귀처럼 생긴 알로카시아(=alocasia)를 ‘알록카시아’, ‘무뉘토란’이라 표기한 것은 쓴웃음을 자아냈다. 피라칸다(pyracantha→피라칸사 혹은 피라칸사스)를 ‘피라칸샤스나무’라고 이름 붙인 것은 또 무슨 조화란 말인가. ‘국가정원 지정 1주년’ 기념행사고 많은 이들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으면 좀 더 성의를 보였어야지….

국가정원과 헤어지기 전 느티마당 근처 수생식물원 주위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시간이 없었나? 이 일대는 십리대숲보다 손질이 미흡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새들의 접근을 가로막고 있는 ‘모네의 다리’ 주변이 잡초로 무성해 보이는 이유는? 누렇게 바랜 메타세쿼이아 잎이 흉물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그래도 너그러운 마음을 먹기로 했다. 코로나 탓이었겠지, 일손도 모자랐을 거고….

수은주가 한 자릿수로 곤두박질 친 이날 밤, 공연장 두 곳을 더 둘러보았다. 본사가 ‘만남의 다리’(울산교) 아래에서 마련한 ‘향수 콘서트’와 김외섭무용단이 태화루에서 마련한 ‘예인(藝人) 전화앵’ 공연이 그것. 갑작스런 추위도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 앞에서는 꼬리를 내린 그런 밤이었다. 이것도 코로나가 몰고 온 또 하나의 해프닝이었을까?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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