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건물로 뒤덮인 태화강변, 우리시대 최악의 실수죠”
“고층건물로 뒤덮인 태화강변, 우리시대 최악의 실수죠”
  • 김정주
  • 승인 2020.10.2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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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건 울산대 명예교수
한삼건 울산대 명예교수.
한삼건 울산대 명예교수.

 

박사논문 우리말로 번역, 단행본 펴낼 예정

공대 재직 25년간 학부장에서 교육방송국장, 부학장, 학생복지부처장, 학장에 이르기까지 대학교 요직을 두루 거친 한삼건 울산대 명예교수(62, 공학박사). 그에게 2020년도 2학기는 ‘잔인한 계절’로 각인될지도 모른다. 1학기 때와는 달리 2학기엔 대학원 강의 기회마저 사라져 본의 아니게 ‘연구년(안식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무던히 애를 쓴다. 기약 없이 길어질지도 모르는 ‘집콕 생활’에 익숙해지려고…. 이 느닷없는 생활이 ‘자의반 타의반’(自意半 他意半)은 아니다. 집 안팎으로 겹겹이 조여 오던 반목질시의 시선을 지우는 일에도 이젠 이골이 났다. 하지만 그의 사전에 ‘좌절’(挫折)이란 단어는 없다. 차곡차곡 입력해둔 인생여정을 다시 꺼내 들춰봐도 ‘좌’(挫)자와는 인연이 멀어도 한참 멀다.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각오를 다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새로운 ‘집콕 일거리’도 하나 생겼다. 일본 교토(京都)대학 박사학위의 디딤돌논문 <역사도시 경주의 도시변용에 관한 연구(1994.3)>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단행본으로 펴내는 일이 그것. 그밖에도 신경 써야할 일이 한두 건이 아니지만 이 모두 차분히 대처해 나갈 참이다.

교토대학 시절 ‘간다라 유적’ 발굴에도 참여

사실 1988~1995년에 걸친 일본 생활 7년(연구생 1년, 석사과정 2년, 박사과정 3년, 취업 1년)은 한 교수에게 가능성과 희망의 싹을 틔워준 절차(切磋)와 탁마(琢磨), 도약(跳躍)의 시기였다. 그는 교토대학 대학원 공학연구과에 ‘건축학전공 연구생’으로 입학한 뒤 석사[修士·수사]과정(1991.3 수료)과 박사과정을 두루 거쳤다. 박사학위를 거머쥔 그는 오사카 (주)니켄[日建]설계계획사무소에서 1년간 근무한 경력도 추가했다.

교토대학 연구생으로 이름을 올린 첫해 그는 일본 △시마네현의 농가(부농) 실측조사와 △규슈 우수키 성곽마을 실측조사는 물론 △도요토미 히데요시 유적지 발굴에도 동참, 착실하게 경험을 쌓는다. 이 경험은 교토신문 창간 110주년 기념 기획연재 52회 가운데 10회나 참여하게 만든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그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추억거리가 또 한 가지 더 있다. 박사과정 첫해인 1991년 10월, 파키스탄 간다라 지방의 마르단 유적지 발굴에 합류한 일이다. 한 교수가 그때의 기억을 되살린다. “그분들 말이 신라 혜초스님(인도 여행기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의 저자)이 다녀간 이후 한국인으로는 처음 그 땅을 밟았다고 해서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그 무렵 지도교수는 간다라 미술의 권위자인 니시카와 고지(西川幸治) 교수라 했다.

일본 생활을 사실상 접은 한 교수는 2013년 8월부터 5개월간 류큐대학 건축학과 방문교수로 다시 일본 땅을 밟게 된다. 뜻하지 않은 이유로 잠시 교단을 떠나있게 된 그는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그때 일본에 그대로 주저앉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그러나 그는 끝내 고국으로 돌아온다. 전공을 살리더라도 연구와 실용의 대상을 한국에서 찾겠다는 각오가 섰기 때문이다. “일본 건축계에서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해서 시선을 해외로 돌리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자연히 한국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오사카 생활 1년 만에 한국행을 택한 겁니다.”

△ 지난해 8월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상 앞에서 다정한 모습으로 찍은 가족사진. 왼쪽부터 부인 강혜경 의원, 아들 도현·딸 유진씨와 한삼건 교수.
△ 지난해 8월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상 앞에서 다정한 모습으로 찍은 가족사진. 왼쪽부터 부인 강혜경 의원, 아들 도현·딸 유진씨와 한삼건 교수.

 

“학성공원 정상부 소녀 두상, 품격 떨어뜨려”

연금(軟禁) 같은 자택 생활 속에서도 한 교수의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식을 줄을 몰랐다. 몇 가지 현안 질문에도 그는 전문성 깊은 지론으로 성의 있게 답했다. 질문의 주제는 학성공원, 태화강국가정원 고층건물 문제였지만 덤으로 ‘철도시대 대비책’도 들려주었다. 다음은 3가지 답변의 대강을 간추린 것.

▶ 학성공원= “일제강점기의 공원 명칭은 ‘울산공원’이었고, 1935년 ‘고적 제21호’로 지정될 때의 명칭은 ‘울산학성’이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두 명칭이 모두 바뀌어 문화재 명칭은 ‘울산왜성’, 공원 명칭은 ‘학성공원’이 됩니다. 학성공원이 일정(日政) 때 문화재가 된 것은 일본인들이 그들 선조의 유래가 있는 곳을 현창(顯彰)하기 위한 사업의 결과물입니다. 서울 남대문은 고시니 유키나가가, 동대문은 가토 기요마사가 통과한 곳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울산왜성도 1915년에 성지보존회가 결성되고, <蔚山城址考(울산성지고)>라는 상세안내서가 간행됩니다.…학성공원은 원래 성곽이어서 수목이 못 자라도록 관리한 곳입니다. 지금은 수목을 너무 많이 심어 문제가 많습니다. 소나무가 많은 곳에 같은 상록수인 동백나무를 너무 많이 심어 시각적으로 은폐된 곳이 많고, 밤에는 너무 어두워 방문객이 불안해합니다. 더구나 공원 정상부에는 일본에서 가져온 동백나무를 심고, 보호철책을 두르고, 기괴하고 거대한 모습의 소녀 두상(頭像)을 설치해 공원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문화재라는 학성공원의 성격은 왜성 석축 유구의 현상 보존으로 충분히 유지할 수 있습니다.”

▶ 태화강국가정원= “태화강국가정원 지정은 민선7기 시정의 성과물입니다만, 정원구역 거의 전체가 ‘하천부지’여서 시설물 설치가 불가능합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첫째, 국가정원구역 일부라도 시설물 설치가 가능한 지목 즉 ‘잡종지’나 ‘대지’로 바꾸어야 합니다. 둘째, 국가정원 구역을 태화강 건너편 남산까지 확장하는 겁니다. 남산은 지목이 ‘임야’이고 자연녹지이면서 ‘근린공원’이어서 이 성격에 맞는 시설물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셋째, 현행 지목을 유지하면서 지금의 지면은 자연상태의 정원으로 유지하되 그 상부에 바닥과 거리를 둔 하늘정원을 만드는 겁니다. 이 경우 지목은 못 바꾸더라도 하늘정원을 인공적인 정원으로 만들면 두 겹의 레이어가 교차하면서 홍수 때 침수피해도 막을 수 있어서 흥미롭고 차별화된 국가정원이 될 수 있습니다.(하략)”

▶ 고층건물= 울산시민의 젖줄인 태화강과 접한 동(洞)이나 리(里)에는 시민의 절반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방과 전답뿐이던 강변에 지금은 고층아파트단지와 주상복합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도시계획 단계에서 강변지역 토지이용계획을 잘못 수립했기 때문입니다. 즉, 대부분이 상업지역과 준주거지역인 명촌교~태화교 구간의 강변 일대가 높은 용적률을 얻을 수 있다는 이유로 주상복합아파트가 줄지어 들어선 겁니다. 심지어 미관지구인 대로변은 아파트 건축이 불가능한데도 ‘미관보호시설’(=건물 정면에 설치한 조경)을 갖추면 허가를 해주었고, 그 결과 주거건축의 대다수가 초고층 건축으로 이어지는 바람에 울산의 스카이라인은 전혀 아름답지 못합니다. 아파트와 같은 주거건축은 야간에 사람들이 쉬고 잠자는 곳이어서 화재 발생 가능성이 업무빌딩보다 더 높습니다. 더구나 태화강변에 늘어선 고층아파트와 주상복합아파트는 엄청난 예산과 행정력, 시민의 땀과 노력으로 되살려낸 태화강의 수질과 풍경을 독점하고 있어서 문제입니다. 세느 강변, 템즈 강변, 빌바오의 네르비온 강변을 떠올리면 아파트로 뒤덮인 태화강변 풍경은 우리 시대 최악의 실수입니다.

지난 5월 스승의 날에 즈음해 퇴직기념 송별잔치에서 만나 ▷회포를 푼 한삼건 교수 부부(앞줄 가운데)와 한 교수의 사회인 제자들.
지난 5월 스승의 날에 즈음해 퇴직기념 송별잔치에서 만나 ▷회포를 푼 한삼건 교수 부부(앞줄 가운데)와 한 교수의 사회인 제자들.

 

대학신문사 학생주간-수습기자로 만난 부부

8년 연하의 부인 강혜경 여사(54, 울산중구의회 의원, 생활환경학 학술박사)와는 이른바 ‘캠퍼스 커플‘이다. 결혼한 시기는 1989년 3월 5일. 한 교수가 교토대학 연구생 신세를 마치고 석사학위과정을 시작하기 바로 한 달 전이다. 그가 이실직고했다. “연애결혼이 성사된 겁니다.” 알고 보니 둘은 울산대 신문사에서 ‘복학생 학생주간’과 ‘수습기자’ 신분으로 만나 열애(熱愛) 끝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처음엔 선후배 관계로만 생각했는데 집사람이 하도 끈질겨서 저도 항복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면서 씩 웃는다.

한 교수는 중구 우정동 ‘성황당 나무 밑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 장가갈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부부 사이에 연년생인 아들(22, 대학 휴학 후 공군 복무)과 딸(21, 대학 2학년)을 두었다. 학성고 6회 출신. 윤정록(시의원), 김석암(울산향토사연구회장), 정태석 울산시축구협회장,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한진규 전 울주군 부군수 등이 고교 동문들이다.

울산대 공대 강단에서는 ‘건축학’ 한 우물만 팠고, 저서는 <울산지역 성곽연구, 울산대 출판부(2017)> 등 30여 권을 헤아린다. 표창·수상 경력은 국무총리 표창(2020.8),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2017.12), 일본건축학회 학술상(저작) 수상(2013.5)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 위원(2018.11~2019.10)도 역임했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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