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황과 위정자들
가황과 위정자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0.12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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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란 온몸에서 뿜어 나오는 인간의 표상(表象)과 같은 것이다. ‘말’이란 그 사람의 매너가 될 수 있고 품성일 수 있다. 또한 ‘말’은 출세의 길이 되기도 하고 행복한 삶으로 다가가기 위한 첩경이 되기도 한다.

자고로 ‘말’은 선하게 표현함으로써 천냥 빚도 갚는다고 하지 않나? 심지어 그 선한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봄눈 녹듯 풀어질 수도 있고 나쁜 말 한마디로 일체가 단절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늪으로 빠질 수도 있다. 특히 위정자에게는 출세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디지털시대에는 언젠가 소송거리에 중요한 증표가 되기도 한다.

예인(藝人)에게도 다를 바 없다. 20, 21C 두 세기에 걸쳐 살고 있는 7080세대의 가황(歌皇) 나훈아가 있다. 올 추석 선물로 국민들에게 노개런티 공연을 언약하고 화려하게 무대를 열었다. 언택트(→비대면) 시대에 보기 드문 화젯거리가 된 것이다. 코로나19로 오랫동안 지쳐있는 우리 국민들을 보고 더 이상 앉아있을 수 없다며 통 크게 나선 것이다. 그는 다부지게 말한다. “내가 꼭 비대면 공연이라도 해야겠다. 이 어려운 시기에 가만히 있으면 두고두고 후회가 될 것 같아서…”라고. 실제로 무대공연에서 그의 몸값은 어마어마한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을 위하여 기꺼이 예능기부를 한 거다. 이런 멋진 공연을 보여준 그에게 ‘한가위 달만한’ 큰 박수를 쳐주고 싶다.

식상한 뉴스들로 점철되어 있는 권력자들의 추한 면상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화딱지가 난 게 분명하다. 정말 우리 국민과 대한민국이 니꺼냐고 소리 지르고 싶을 것이다. 고향의 노래든 인생과 사랑의 노래든, 테스형을 찾아 헤매듯 울부짖는 무대는 국민들의 속을 뻥 뚫는 듯 했다. 이러쿵저러쿵 변명이나 하고 더러운 속어로 뿜어대는 위정자들의 작태와 비교하면, 올 한가위명절은 울산 꿀배같이 상큼한 선물이었던 것 같다. 그는 화끈하고 남자답고 용맹스럽다. 그럼에도 그 큰 몸체에서 우러나는 가늘고 애절한 목소리는 의외로 가슴을 후벼 팠다.

우리의 삶이란 뭐 특별한 것이 있겠나. 이렇게 어렵고 힘들 때 용기를 주는 자야말로 진정한 위인이 아닌가?

거짓말로 도배하듯 말하는 뻔뻔스러운 위정자들. 기껏 했다고 하는 업적이 성추행이나 성폭행이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그들의 민낯은 어떻게 숨길지 궁금하다.

하버드나 MIT만 나오면 상대접을 받는 우리 사회. 지식은 있지만 ‘정의가 담긴 지혜’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지식인들. 제발 지난날 우리네 선각자들의 높은 기개와 품성을 본받았으면 좋겠다.

“소설 쓰시네…” “저이가 검사가 되면 몇 사람 잡겠네…” ‘즈봉’(→양복바지)을 즐겨 입는 숏다리 걸음의 추(醜)한 여인. 이빨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사이시옷 발음, 그야말로 세치 혀에서 나오는 말이라면 다 말이던가! 국민이 개돼진가, 정말 듣기에 거북스럽다. 이렇게까지 욕망의 정치를 하고 싶은 건가?

서양에서 ‘여성스럽다’라는 말은, ‘래디쉬’하고 ‘페미닌’한 성품일 때 쓰는 말이라 한다. 예부터 한국의 보수적 성 관념으로 ‘여성스럽다’는, 애 잘 낳고 애 잘 기르며 가정 건사 잘하는 성품을 말하던가. 아니면 얌전하고 말수 적고 조곤조곤 얘기하는 여성을 일컫던 말이던가. 아니 목소리 작고 호호 웃는 귀여운 여성을 일컫던 말이던가.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내공을 쌓는 일도 중요하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상삼요(桑三搖)’를 생각해 보라! 그 세 명 중 개국공신인 정승 ‘상우춘’의 자세를 꼭 배웠으면 한다. 욕망을 절제하고 관리할 줄 아는 자만이 세상의 인심을 얻을 수 있음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김원호 울산대 명예교수/에세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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