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 형! 일자출가자의 독백입니다
테스 형! 일자출가자의 독백입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0.1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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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형! 일자출가자(一子出家者)의 독백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정월, 차가운 바람이 살을 에는 듯한 어느 날,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다가가 보니 아래에는 여성이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모두 걱정만 할 뿐 누구 하나 선뜻 뛰어내려 구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젊은이에게 뛰어내리기를 재촉했지만 뒷걸음치며 쳐다만 볼 뿐이었습니다. 허우적거리던 여성이 지쳐 가는 순간 수염이 하얗게 센 노장(老丈)이 강물로 뛰어내렸습니다. 모두가 손뼉을 치며 격려했습니다. 그러나 노장의 행동이 이상했습니다. 여성을 구하기는커녕 자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모두가 협력하여 여성과 노장을 무사히 구했습니다. 소식을 접한 기자가 현장을 찾았습니다. “노장께서는 젊은이도 어려운 용기를 내셨는데 어떤 마음에서 여성을 구하게 되었습니까?” 노장은 가쁜 숨만 몰아쉬면서 상기된 얼굴의 물기만 훔칠 뿐 대꾸가 없었습니다. 기자가 재차 물어도 노장은 씩씩거리며 손사래만 칠뿐 대답이 없었습니다. 노장은 또다시 묻는 기자의 질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갑자기 우레 같은 소리로 “어느 놈이 뒤에서 내 등을 밀었나”면서 눈알을 부라리며 이리저리 찾았습니다. 얼마 후 노장은 흥분을 삭히고 앞뒤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사연인즉, 길을 가다가 다리 위에 사람이 모여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무슨 일인가 호기심이 생겨 가보니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답니다. 이를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등을 와락 떠밀어 다리 아래 강물에 빠지게 됐다는 것입니다. 인터뷰를 거절한 것은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두 비유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노장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군중이 떠미는 바람에 다리 아래로 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노인은 자신의 행동을 진솔하게 말한 분이었습니다.

테스 형! 중국 선불교의 역사를 서술한 ‘오등회원(五燈會元)’이란 책에 ‘일자출가 구족승천(一子出家 九族升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자출가 즉, 자식 한 사람이 출가하면 구족이 하늘에 오른다는 말입니다. 구족(九族)이란 본인을 중심으로 위로는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아래로는 아들, 손자, 증손, 현손까지 포함해서 일컫는 말입니다. 세속에서 한 남자가 출가하기로 하면 많은 부처와 나한들이 모여 회의를 해서 출가자를 어느 종단, 어떤 사찰, 어느 문중으로 보낼 것인가를 결정한답니다. 만든 이야기지만, 한 스승 아래 문중에서 사형과 사제의 연이 소중한 이유입니다. 훌륭한 재목감이 믿음으로 문중에 들어가면 사형들은 반드시 기쁜 마음으로 버선발로 맞이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소나 닭 쳐다보듯 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테스 형! 세상은 넓게 변했는데 사고와 인식은 좁은 골방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손에 끌려 절에 들어온 것을 ‘동진’(童眞=승려가 될 뜻을 가지고 절에 와서 불교를 배우는 사내아이)으로 외식(外飾)하기도 하고, 수행과 삶에서 한 번도 방황하지 않은 것을 마치 출가사찰을 외호(外護)한 것으로 호도(糊塗)하기도 하며, 주지 소임의 횟수와 연수를 수행의 잣대로 여겨 기도하기도 하고, 무소유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기도 하는데… 수행을 가장한 소수의 야망이 결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테스 형! 걸사(乞士)라 자칭하면서 공양 때마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헤아려보니 덕행이 부족한 나로서는 받기가 부끄럽네…” 혹은 ‘한 톨의 쌀의 무게가 천근(一米千斤)’이라는 등 실천보다 말로 갚는 일에 익숙한 것이 현실입니다. 소수는 출가의 목적이 종신소임인 감원(監院)에 있는 것 같아 보기에 안쓰럽습니다. 무소유를 절창(絶唱)하면서 불사(佛事) 권선록(勸善錄)은 설판재자(說辦齋者=법회에 드는 모든 비용을 마련해서 내는 사람)를 찾는데 일자출가자는 자긍심이 큽니다. 왜냐하면, 의식주의 해결이나 말사 주지의 소임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테스 형! 이런 관점에서 현실적으로 일자출가자의 사회참여가 가능할까요? 과거는 물론 현실적으로 녹록치 않습니다. 그 이유는 관점과 경우의 차이가 크게 작용하겠지만, 먼저 전문성의 자격을 갖추어야 실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등의 연유로 사회참여가 자유롭지 못하고 제한됩니다. 자유로운 사례도 있습니다. 사회학, 유아교육, 국악, 불교학 등을 각각 전공한 일자출가자는 노인복지회관 운영, 유치원 경영, 국악과 교수, 불교학 교수 등 전문직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테스 형! 노인의 등을 뒤에서 밀면 떨어지지만, 일자출가자의 등을 떠밀면 위로 날 수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비상(飛翔) 중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의 하나가 사회적 참여일 수도 있습니다. 무늬만 출가자인 소수의 편견과 차별의식으로 등을 떠미는 바람에 높은 벽이 자꾸만 높아져간 결과입니다.

테스 형! 육조 혜능은 “불법은 세간 가운데 있으니 세간을 떠나 깨달음을 찾는다면 이는 토끼 뿔 구하는 것과 같다.”라고 했고 대안, 원효 스님은 그렇게 실천했습니다. 테스 형! 일자출가자 대부분은 상식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목화(睦和)를 수행합니다. 테스 형! 일자출가자의 독백에 끝까지 귀 기울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 조류생태학 박사·철새홍보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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