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현장 지켜보기
화재현장 지켜보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0.11 2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휴대전화 소리에 자다가 일어났다. 심상찮은 예감. 시계를 보니 자정이 1시간 지났다. TV를 켰다. 주상복합아파트 화재 소식이다. 안전안내문자에 시선이 갔다. “오늘(10.8) 23시 30분경 삼환아르누보아파트 화재 발생, 아파트 주민들은 속히 대피 바랍니다.” 접수시각이 9일 0시18분인 ‘남구청’의 메시지다. 뉴스를 보면 불이 난 지 1시간 조금 넘은 시각.

몸이 본능을 따르기 시작했다. 취재본능! 방한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남서쪽 하늘 한 자락이 서치라이트를 켠 듯 밝다. 잰걸음으로 15분 남짓. 주민 수백 명이 대로변 인도를 가득 메웠다. 차도만 소방·구급차와 긴급요원들의 차지. “안쪽으로 들어가세요.” 여성 의용소방대원도 교통정리에 일손을 보탰다. 근착 뉴스 그대로 외벽의 불길은 거의 잡혔는데 아파트 북동쪽 중간허리춤의 불길은 날름거리는 뱀의 혀 그대로다.

“점점 더 부네, 바람. 좀 잠잠해져야지.” 순간최대풍속이 시속 30.2㎞라면 초겨울 칼바람이다. 오전 1시 25분쯤. 연이은 호각소리 속에 폭음이 들렸다. 여성 한 분이 놀란 표정이다. “저걸, 어떻게! 자재가 아래로 떨어지잖아.” 옆의 남성도 걱정을 보탠다. “아이고~” 보아하니 화재대피공간에서 2개 층 더 높은 층 복도의 뱀 혓바닥 불길이다. 화염 속에서 가연성 자재와 사투를 벌이는 소방대원들,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주상복합 3층 발코니인지 바로 옆 2층 민가 옥상인지 모를 곳에서 소방호스 진화작전이 개시됐다. 소방대원들이 불길을 겨냥해 소방호스 분사(噴射)를 시도한 것. 그러나 물은 절반도 못 가 맥없이 고개를 숙인다. 호스도 이내 자취를 감추고 만다. 명색이 광역시라면서 고층건물 진화용 고가사다리가 하나도 없다? 웅성거리는 여기저기서 소리가 났다. “소방서에서 전부 다 나왔다면서 불도 못 끄고 뭐 하노? 소방헬기라도 와야 하는 것 아이가?” “안에 사람은 없는 것 같다만, 소방차가 와서 불도 못 끄면 우짜노?”

불구경하는 주민들 속에는 아파트를 황급히 빠져나온 입주민과 그들의 지인도 섞여 있었다. 두 손을 기도하듯 모으고 불 켜진 아파트에 시선을 꽂은 여성도 그런 분들의 하나. 누군가와 대화를 주고받던 한 부부가 안도의 숨을 내쉰다. “찬훈이가 살아있단다. 그러면 된 거지. 그런데 정말, 장난이 아니야.” 건물계단에 진을 친 한 젊은 여성은 휴대전화로 실황중계하기에 바쁘다.

도착한 지 1시간이 지났을 무렵 발길을 집으로 되돌렸다. 오전 2시 20분인데 대로변 인도에서는 새벽을 깨우는 청소차들의 작업이 한창이다. 다시 켜 본 TV에서는 따끈따끈한 속보가 줄을 잇는다. 병원을 다녀간 주민 40여명은 단순한 연기흡입이나 찰과상 환자일 뿐 사망자·중상자는 없고, 입주자 50여명은 화재대피공간 두 곳과 33층 옥상으로 피신해 구조를 기다리고 있으며, 소방헬기는 강풍 때문에 뜨지 못한다는 소식….

11일 오전, 다시 현장을 찾았다. 아파트 1층 바닥의 어지러운 잔해들이 이틀 전 새벽의 긴박함을 다시 소환했다. “합동감식은 오전 11시부텁니다.” 9일, 곧바로 서울서 내려왔다는 KBS화재감식위원이 KBS 기자에게 한 귀띔이다. 그러고 보니 처음 보는 방호복들이 수두룩하다. 국립소방연구원, 한국전기안전공사, 국과수(NSF), 경찰과 소방대원까지…. 옷가지며 급한 물건을 가방에 챙겨 나오던 여성 입주자 2명의 전언을 들을 수 있었다. “저희는 임시숙소로 농수산물 맞은편 S호텔을 배정받았어요. 제가 사는 22층은 그나마 다행인데 19~20층과 옥상층은 피해가 엄청난 모양이에요.”

근처에 사는 70대 주민의 말도 발길을 멈추게 했다. “입주자 중에는 그날(8일) 입주계약을 마친 분도 있다고 합디다.” 많은 물음표를 남긴 15시간 40분짜리 살아있는 드라마였다.

김정주 논설실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