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놓은 시간들을 찾아서 ④ 문중 비사…친일파 피붙이를 처단하다
묻어놓은 시간들을 찾아서 ④ 문중 비사…친일파 피붙이를 처단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0.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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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거사 참여 수준도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인 그것일 수 있다. 강점기의 삼엄한 분위기를 무릅쓴 채 은밀히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함께 태극기를 만드는 등의 행위는 평범한 수준을 넘어선 행위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서 할아버지가 태극기를 가지고서 전개할 거사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일행들에게 그 취지를 강조하면서 입단속을 하거나 행동요령 등을 지시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은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어느 개인의 모습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인물의 모습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언양지역 만세운동에서 할아버지도 주동자의 범위에 들어갈지 모를 일이다.

한편 할아버지는 여러 가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족보에는 이규삼으로, 바깥에서는 주로 이명서로 불렸지만 이런 것 말고도 가명들이 숱했다고 한다. 그런 현상도 어떠한 정치적 활동을 말해줄 근거가 아닐까. 가명은 대개 비밀스런 활동을 감추거나 적대세력의 감시를 따돌리기 위한 전술적 목적으로 쓰이는 정치적 이름이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들, 특히 항일전이나 지하활동의 현장에서 투쟁하던 선열들의 가명은 전형적 사례들일 것이다. 김원봉 의사를 비롯한 의열단 간부 대부분이 그랬고 이봉창 의사나 신채호 선생, 숱한 진보적 민족해방투사들이 이런저런 가명들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장손의 딸이 관련 기록이 있을까 하여 천안 독립기념관을 찾았을 때다. 담당자도 그런 이치를 말했단다. 즉 독립운동가들이 흔히 이런저런 가명들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렇듯 본명 대신 가명들을 사용한 탓에 그 분들의 구체적 행적을 밝혀내는 작업이 참 어렵다는 것이다. 여러 가명을 사용했기에 할아버지의 행적 역시 독립기념관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이 어찌 기록 안에만 담겨있으랴. 구술사도 있기 때문이다. 가시적 증거가 없을 경우 구술의 역사가 빈틈을 메꾸어줄 수가 있다. 전해지는 과정에서 기억이 끊어지거나 사실이 변형되는 등의 단점이야 있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관련한 이해관계에 있어서 자유롭고 보편적인 사람들이 말해줄 수 있는 사실이나 진실은 오히려 구술사에 들어있을 수 있다. 또한 감시나 추격을 따돌려야 하는 긴박하고 절박한 현장의 역사들은 기록하고 보존할 여유 자체가 있을 수가 없다. 그런 사연은 기록으로 노출해야할 한가로운 잡사도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이 기록되지 못한 탓 때문에도 묻어놓거나 잊어버린 인물과 사건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나마 구술의 역사가 있어서 비록 온전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그런 내용을 복원하고 평가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랴. 할아버지의 행적을 전한 여러 사람들과 그들의 기억을 다시 전하는 장손의 구술은 그런 점에서 주목되어야 한다.

이명서 즉 이규삼 할아버지의 항일적 이력을 말해줄 또 하나의 사건이 주목된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경주 이씨 문중의 한 인사를 살해한 일종의 문중 비사가 그것이다. 상대의 신분에 대하여 장손은 그를 울산 쇠부리광산의 사장이라 하면서 그의 구체적 이름까지를 거듭 강조했다. 이늑우라고 하는 일가붙이였다. 항렬자가 ‘우’자이니까 그는 손자 항렬의 인물이 된다.

왜 죽였을까. 문중 피붙이의 살해 이유에 대해 장손에게 자세한 관련 정보는 없었다. 하지만 손자가 단언하는 내용은 상대 인물의 친일 행위를 응징한 것이었다. 친일과 관련한 자세한 정보도 손자에게는 없었다. 하지만 정황은 친일의 무게 정도는 말해줄 수 있다. 그것은 살해당할 정도의 행위, 그것도 일가의 손에 살해당할 정도의 행위가 아니던가. 즉 적극적 수준의 친일 행위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개인적 거래관계에서 비롯된 사사로운 이유로 이늑우를 죽였을 수도 있다. 관련 인물들이 쇠부리광산을 둘러싼 거래관계 속의 존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 이늑우가 쇠부리광산의 광산주나 사장이라면, 할아버지는 두서 새터 쇠부리 등을 소유 운영하는 점주로서 이늑우의 달천광산에서 철광석 등의 원료를 구입해가는 고객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서로 거래관계에 놓인 인물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살해 사건은 그런 거래과정에 얽힌 이를테면 갑을관계 같은 것에 얽힌 사사로운 원한 사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살해 이유를 추적하기 전에 손자의 구술에 엿보이는 과장이나 부정확한 내용을 미리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우선 상대 인물의 신분에 대한 내용이다. 할아버지가 응징한 상대의 신분에 대해서 손자는 쇠부리광산의 광산주인 사장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강점기 당시의 사장이 조선사람일 수는 없다. 광산을 발굴한 이의립 이후 경주 이씨 후손들에게 대대로 상속되어오던 이 광산이 1906년에 이르러 일제에게 강탈당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통감부가 만든 광산법 아래 일본인 나카무라에게 강탈당한 1906년 이후 해방 때까지의 사장은 나카무라나 그런 류의 왜놈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처단 대상이 광산 사장 이늑우가 아닐 수가 있다. 이늑우가 경주 이씨 문중 일가라고 하는 사실 자체는 맞을지도 모른다. 손자가 해당 이름을 한사코 특정하여 강조하기도 하거니와 외부 사건을 굳이 문중 내부의 욕될 사건으로 둔갑시킬 까닭도 없겠기 때문이다.

(⑤편으로 이어짐)

이노형 고래문화재단 상임이사/전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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