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현상’
‘나훈아 현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0.0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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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세긴 세던데.” “코값 하나 지대로 하더라.”…“꼬라지 꼴값하는 거지.” 추석연휴 첫날과 넷째 날, 두 차례에 걸쳐 KBS2 ‘2020 한가위 대기획’에 나와 비대면 콘서트의 진수를 선보인 가수 나훈아. 그에 대한 지인들의 코믹촌평 일부다. 연예기자들은 주저 없이 그를 ‘가왕(歌王)’에서 ‘가황(歌皇)’으로 고쳐 불렀고, 어느 기자는 기사의 첫머리를 “가황 나훈아의 저력이 추석 안방극장을 점령했다”고 묘사했다.

KBS로서는 실로 오랜만의 ‘대박’이었을 게다. 시청률 조사회사가 이를 뒷받침했다. 첫째 공연(‘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은 29.0%, 둘째 공연(‘나훈아 스페셜’)은 18.7%를 기록했다는 것이 ‘닐슨코리아’의 발표다. 둘째 역시 심야인데도 나훈아의 고향 부산에서는 23.8%로 집계됐고 그 뒤를 서울 20.5%, 대구·구미 20.0%가 차례로 이었다.

난리가 난 곳은 정치권, 그것도 야당 쪽이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기름을 부은 다음날 부산 출신 장제원 의원이 라이터로 불을 지폈다. ‘나훈아의 작심발언’이 그 불씨. 가황의 말 몇 마디에 정치권 전체가 ‘들썩’거린 것이다.

첫날 공연에서 그는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못 봤다. 바로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KBS는 국민을 위한, 국민의 소리를 듣고 같은 소리를 내는, 이것저것 눈치 안 보고 정말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됐으면 좋겠다” “KBS는 거듭나야 한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장제원 의원은 3일 페이스북에서 “나훈아가 잊고 있었던 국민의 자존심을 일깨웠다”며 “‘언론이나 권력자는 주인인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공연의 키워드”라고 말했다. 같은 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전날 의원총회에서 “가수 나훈아씨가 우리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대변해 줬다”며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가 생길 수 없다. 제1야당에 부과된 숙제가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여기서 ‘위정자’의 한자가 ‘爲政者’인지 ‘僞政者’인지, 아직 알려진 바는 없다.)

이번에는 여당 쪽에서 들고 일어났다. ‘아전인수’(我田引水)라고 비판한 것.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3일 페이스북에서 “나훈아의 발언에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고개를 쳐들고 이런 말 저런 말로 남 얘기하듯 하는 걸 보니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라며 “나훈아의 발언을 오독(誤讀)하지도 오도(誤導)하지도 말라”고 맞받았다.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은 “감사한 말을 ‘정치’가 아닌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정치인들의 아전인수식 해석이 놀랍다”고 꼬집었다. 반면, 나훈아의 쇼맨십과 가창력을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민주당 소속 이재명 경기지사는 페이스북에서 “(코로나로 인해) 외로운 시간에 가황 나훈아님의 깊고 묵직한 노래가 큰 힘이 되었다”고 했고, 최민희 전 의원은 “자유로운 영혼, 프로페셔널 대중연예인”이라고 치켜세웠다.

울산지역 반응도 뜨겁기는 마찬가지. 보수-진보 두 진영으로 나뉘어 펴는 ‘아전인수식 해석’도 정치권을 쏙 빼닮았다. SNS상의 설왕설래를 눈여겨보던 L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오늘(10.2) 받은 카톡 다수가 나훈아 쇼에 정치적 의미를 부각시키던데…좋은 노래 배리났다(→버려놨다).” K씨는 이런 느낌을 전했다. “이 나라를 국민들이 지켜왔다는 말은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다. 이걸 야권에서는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데 이 말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고,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 그는 “대중가수들이 유신정권의 가장 큰 피해자였고, 소위 ‘딴따라’들은 반골기질이 있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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