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엑(Doeg)과 광액(廣額)
도엑(Doeg)과 광액(廣額)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0.0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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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추석연휴에 《성경》의 ‘사무엘 상’을 읽었다. 21장 7절에 이르러 이미 많이 들어본 느낌이 들게 하는 이름 ‘도엑’(Doeg)을 발견했다.

“그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사무엘 상 21:7)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도엑은 사울의 신하이고, 에돔 사람이며, 사울의 목자장이었다. 22장 9절에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라 하여 도엑이 사울왕의 신하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 22장 17절에서는 도엑이 다윗의 추종자들을 도륙(屠戮)하는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왕이 좌우의 시위자에게 이르되 돌이켜 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의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고발치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인을 죽였고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사무엘 상 22:17-19)

훗날 다윗은 도엑의 잔인함과 그가 치러야 할 죄값을 위하여 시편에서 기원하고 있다.

“강포(强暴)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削刀)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간사(奸詐)한 혀여, 네가 잡아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그런즉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취하여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시편 52:1-5)

이어 다윗은 시편에서 도엑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시편 52:7)

도엑의 관련기사를 종합하면, 자신의 탐욕과 교만 때문에 도륙에 앞장섰고, 죽이지 말아야 할 사람들까지 죽인 잔인한 행위를 엿볼 수 있다.

도엑에 관한 기사를 읽는 동안 마음 한구석은 삼십육 년 전 불국사불교전통강원 시절로 달려가고 있었다. 강원에서 서장(書狀)·도서(都序)·선요(禪要)·절요(節要) 등 사집과(四集科)를 이수할 때의 기억이 또렷했다.

<열반경>에서 ‘광액’이라는 사람의 일화를 찾아볼 수 있다. 광액은 ‘광액도아’의 줄인 말로, 한마디로 말하면 소 잡는 백정이다. 이마가 넓다 해서 광액(廣額)이라 했고, 소를 잡는 백정이라 해서 도아(屠兒)라 했다. 어느 날 백정 광액도아가 부처님이 설법하는 열반회상에 짐승 잡는 도끼를 들고 먼발치에 있었다. 설법을 듣고서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은 그는 “나는 일천 부처가 모인 중에서 한 부처이니라.(我是千佛會上一佛)”고 했다.

열반회상이란 『열반경』을 설하던 법회의 모임이다. 인도 바라나국에 이마가 매우 널찍하고 얼굴이 번들번들한 무서운 백정이 있었는데, 그는 하루에 소를 수십 마리씩 죽이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리불을 친견하고 8계를 받은 후 문득 깨달음을 얻고, 소를 잡던 칼을 도마 위에 탁 집어던지고는 ‘나도 현겁(現劫)의 일천 부처님 중의 하나이다.(我是千佛會上一佛)’라고 부르짖었다는 것이다.

고봉원묘(高峰原妙,1238~1295) 스님은 『선요(禪要)』에서 불법이 세간에 있음과 수행의 환경이 특별한 곳에 있지 않음을 광액의 일화를 빌어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글은 성경에 나오는 ‘도엑’과 불경에 나오는 ‘광액’의 발음이 비슷하고 행동 또한 비슷한 데 착안해 그 일화를 소개한 글이다. 도엑이 회개했다는 기사를 찾지 못했지만, 광액은 참회로 성불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추석은 코로나19로 인해 남녀노소, 부모형제 모두가 불편한 명절을 보냈다. 오늘은 추석연휴가 지난 월요일이다. 도엑과 광액만을 가리켜 망나니 휘쟁이라 부르겠는가?

추석연휴에 부모, 형제, 자매 사이에 마음에 비수 같은 말 한마디를 품었거나 의도적으로 내뱉어 서로를 불편하게 했다면 이 또한 도엑과 광액의 행동이 아니었겠는가?

매년 추석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선물은 밝고 둥근 보름달처럼 큰마음으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여 현실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지혜를 증장시키는 것이다. 혹시 추석연휴에 코로나19로 인해 가족에게 짜증을 내거나 불만을 토로하여 오해를 생기게 했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풀어야하겠다.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찾거나 전화를 걸어야 한다. 먼저 손을 내밀수록 가벼운 발걸음, 환한 미소가 피어날 것은 분명하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 박사·철새홍보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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