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빨·글빨과 하로동선(夏爐冬扇)
말빨·글빨과 하로동선(夏爐冬扇)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9.27 2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빨’ 즉 입김은 듣는 이로 하여금 그 말을 따르게 할 수 있는 설득력을 말한다. ‘글빨’ 즉 글김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 글을 읽고 이해하게 하는 공감의 힘을 말한다. 말빨과 글빨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함께한다. 긍정적 접근은 보탬에 보탬을 더하는 식이지만, 부정적 접근에는 ‘하고잽이’(하고재비)라는 비아냥거림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말빨은 구시화문(口是禍門=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므로 말조심을 하라는 뜻)을 염두(念頭)해야 하고, 글빨은 구고일탁(九顧一啄=천적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주위를 아홉 번 보고 모이를 한 번 쫀다는 뜻)의 태도로 신중해야 한다. 말빨과 글빨의 표준어는 ‘말발’과 ‘글발’이다. 화장발, 조명발, 안주발, 오줌발, 힘발, 권력발에서 ‘-발’의 쓰임새는 말발과 글발의 그것과 비슷하다.

남편의 완전이해로 아내가 두툼해진 지갑으로 외출한다면 그날은 화장발, 옷발, 기분발 어느 하나 불만족스럽지 않다. 남편의 말빨이 먹히지 않을 수 없다. 안주발은 시장기가 있으면 밉상 취급을 받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분위기에 따라 적당하게 조절해야 곱게 본다. 술판에서 술 한 잔에 안주 한 점 혹은 몇 점은 얼마든지 배려가 되지만 안주에 입을 박고 있다면 그 원성은 클 것이다.

칠십 고개를 넘으니 오줌발이 시원찮다는 말을 주위에서 간간이 듣는다. 소변기에 반, 옷에 반이란다. 소변보러 가는데 살며시 휴지를 챙기는 심정에 이해가 간다. 동병상련(同病相燐)이다. 그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월이 그렇게 만든다. 자연의 현상이자 섭리이다.

팔십에 힘발의 한계를 느꼈다는 어느 지인의 벌초 이야기를 들었다. 주차장에서 벌초 묘소까지 약 백여 걸음 거리인데도 그날따라 처음으로 초시기(‘돗자리’의 방언) 하나가 천근만근 무게로 느껴졌다고 했다. 젊었을 때라면 돗자리 한 개 무게가 인찰지(印札紙) 한 장 무게였겠지만, 이제는 천근만근 무게로 느껴지더라는 이야기였다.

정치계에서 말빨 즉 권력발이 안 먹히면 레임덕(lame duck)이라 한다. 임기만료를 앞둔 다양한 직(職)의 장(長)을 ‘절름발이 오리’에 비유한 말이다.

요즘 말빨과 글빨이 하로동선(夏爐冬扇)처럼 안 먹히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현직에서 퇴직했거나 나이 든 것을 망각한 행동에서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허전함이다. 말빨과 글빨이 안 먹히면 그만큼 이름값이 약해졌다는 말이 된다. 과거 말빨과 글빨이 먹혔던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 부탁했는데, 그 결과는 예전 같지 않고 오히려 부탁 안함만 못한 결과에서는 서로가 머쓱해질 수밖에 없다.

말빨과 글빨은 영향력과 같은 것이다. 영향력은 권력을 쥔 자들의 자기중심적 행동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권력자를 신약성경 마가복음서에서는 ‘누룩’에 비유한다. 바리새인과 헤롯에 대한 누룩 비유는 종교권력자와 정치권력자를 암시한다. 생물학적 누룩은 빵을 부풀게 하지만 권력자의 누룩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에 곧잘 비유된다.

말빨과 글빨을 방송과 언론 쪽으로 좁혀 생각할 수도 있으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그와 연계해서 글하나 쓸게’라고 한 글발, ‘내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전해라’라고 한 말발이 적당한 비유일 것이다.

무릇 호랑이가 무서운 것은 강철보다 강한 송곳이빨과 날카로운 발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은 한마디 말이 곧 해결로 귀결된다는 말이다. 종이호랑이, 이빨 빠진 호랑이는 글빨과 말빨이 먹히지 않을 때의 비유적 표현이다. 글빨과 말빨로 오랜 세월 작두를 탔던 자신을 발견했다면 한번쯤 태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태화강국가정원의 대나무밭을 돌아보기를 권한다.

죽순은 지경(地莖) 마디에서 탄생한다. 속이 꽉 차서 싹이 돋는다. 그 후 자라면서 점차 속을 비운다. 속을 비운 결과 무럭무럭 자란다. 그 모습을 우후죽순(雨後竹筍)으로 표현한다. 속을 비웠기에 하늘로 치솟으면서 둥글고 단단한 매듭을 짓고, 곧고 강한 몸을 만든다. 성장을 마무리할 때쯤 끝내 속을 다 비운다. 텅 빈 몸뚱이에서 태어난 초록가지는 부드러운 손짓으로 맑고 푸른 하늘의 춤(Divine Dance)을 춘다. 하늘의 춤은 뿌리의 반근(盤根)과 마디의 착절(錯節) 즉 반근착절(盤根錯節)의 안정된 바탕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 반대의 경우가 ㄱ자로 꺾인 십리대숲 대나무의 몰골들이다.

말빨과 글빨의 영향력은 빽빽한 대숲의 죽밀(竹密)과 태산처럼 높은 산고(山高)에 비유할 수 있다. 아무리 빽빽한 대숲일지라도 흐르는 물을 저지하지는 못하고, 아무리 높은 산으로 가로막아도 나는 흰 구름을 방해할 수는 없다(竹密不妨流水過 山高豈碍白雲飛). 그 원문은 <금강경> 오가해 야보(冶父)의 송(頌)이다. 글빨과 말빨의 피해를 비유하러 끌어들였다.

말빨과 글빨이 먹히는 사람은 사회적 공인(公人)일 가능성이 크다. 공인은 어떤 경우라도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영향력은 객관적 사고와 실천이 뒷받침될 때 그 효력이 정당하고 크게 작용한다. 또한 그 효력은 공적으로 사용할 때 인정되지만 사적으로 이용하면 사회적 지탄을 받기 십상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 박사·철새홍보관 관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