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가게의 아름다운 사연
아름다운가게의 아름다운 사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9.2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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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특별한 하루였어요. 많은 분들께서 칭찬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 몇 자 적습니다.” 지난 7월부터 ‘아름다운가게 울산 신정점’을 이끌고 있는 박종기 매니저(42)가 최근 필자의 e-메일 주소로 보내온 글의 첫머리다. 사연은 기증품인 줄 알고 열어 본 가방에서 현찰 965만원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사연 속에는 박 매니저 외에 이상훈 씨(53)를 비롯한 자원봉사자 여러 분과 남부경찰서 신정지구대 소속 경찰관 3명도 같이 등장한다.

일이 일어난 시점은 9월 24일(금) 아침 9시 10분쯤. 아름다운가게 유리문 앞에 놓인 가방 7개가 출근길 박 매니저의 시야에 잡혔다. (가게가 정식 문을 여는 시각은 매주 월~토요일 오전 10시 30분이다.) 그는 ‘기증자 분이 또, 두고 가셨구나’ 하고 가방들을 가게 안 ‘기증스테이션’ 쪽으로 옮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기증자의 이름이나 연락처, 메모쪽지가 가방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던 것. 활동천사(=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문 열 준비를 마친 그의 머릿속에는 이날따라 밑줄을 그어둔 게 있었다. 점심시간에 여럿이 먹을 피자를 사오는 일이었다. “청소를 같이 하시던 선생님(활동천사)들이 ‘피자! 피자!’하고 자꾸 노래를 부르시더군요.”

박 매니저가 은행에 입금도 할 겸 가게 문을 나섰다. 피자를 들고 다시 돌아온 그를 놀라게 한 게 있었다. “잠시 외출 후 매장에 도착했더니, 선생님들이 모여 계셔서 무슨 일인가 하고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가방에서 5만원권이 다발로 발견된 겁니다. 정확히 193장, 총 965만원이었습니다.”

현찰을 찾아낸 이는 기증품들을 분류하고 판매가격을 매기는 이 가게의 몇 안 되는 남자활동천사 이상훈 봉사자. 그는 5만원권 발견 소식을 다른 봉사자들에게 곧바로 알렸다. 다음은 박 매니저가 보내온 글의 일부. “생산 작업을 혼자서 묵묵히 하시는 것도 죄송하고 감사한데, 제가 부재중인데도 거액의 돈을 찾아주신 선생님의 인품에 너무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후의 행동이 더 감동적입니다.” “선생님(이상훈 씨)께서는 너무나 당연한 듯 돈가방을 제 책상에 올려두신 뒤 다른 분들께 말씀하시고는 여전히 가격작업에 열중하고 계셨습니다.” 다음은 박 매니저가 전한 이 봉사자의 말. “매니저님. 혹시 다른 물품은 작업해서 매장에 내놓아도 될까요?”

이 봉사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 매니저는 ‘아름다운가게 울산본부’의 서은주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찰과 물품의 처리방법을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결론이 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습득물’로 보고 경찰에 맡기기로 한 것. 즉시 남부경찰서 신정지구대에 알리고 보관을 요청했다. 급히 달려온 지구대의 경찰관 3명이 인수해 간 시각은 이날 오후 1시 18분쯤. 5만원권 지폐를 포함한 가방 7개는 현재 ‘남부경찰서 유실물센터’로 옮겨져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물음표로 남아있는 것은 가방 주인의 정체와 습득물의 성격. 경찰의 CCTV 확인으로 알아낸 것이 조금은 있었다. 24일 5시 50분쯤, ‘은색 쏘나타’를 타고 홀로 나타난 ‘60대 초반의 여성’이 가방을 ‘기증’하고 간 것으로 보인다는 것. 박 매니저가 그래서 부탁한다. “주인이 꼭 나타나셔서 기쁘게 찾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훈 봉사자에 대한 칭찬이 다시 이어졌다. “일찍 퇴직하시고 다른 자원봉사도 하시지만, 아름다운가게가 재미있고 다른 분들을 직접 도와드릴 수 있어서 좋으시다는 우리 활동천사님을 꼭 좀 칭찬해주세요.” 매장 일을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힘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 알려드리고 싶었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봉사자들은 “칭찬은 박 매니저가 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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