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 오산(鰲山), 환경가치 인식과 활용
태화강 오산(鰲山), 환경가치 인식과 활용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9.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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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울산사람들이 겉으로 알고 있는 개비고개, 개뱅이고개, 개미고개란 지명과는 달리 역사의 깊이가 있는 계변(戒邊)과 계변설화를 기초로 울산학춤이 생성된 예술이 있는 고장이다. 이 때문에 울산의 여러 지명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염려의 소리와 움직임에 공감이 간다. 이러한 움직임은 정체성을 찾아 애향심을 높이고 정주민의 자긍심을 심어준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지명에는 역사성과 지역성 등 지역민의 사고와 의지가 담겨있고, 생활풍습과 지역 문화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지명에는 지역의 독특한 설화와 흔적, 풍속 등이 담겨있기에 원형 보존과 현대적 재해석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서서히 잊히고 끝내 멸실되고 만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른 지방과 차별화된 독창적 지역문화가 일반화·보편화되는 결과로 변질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지명의 원형 보존과 올바른 해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태화강 오산(鰲山) 바로 읽기는 매우 보람 있는 일이다.

오산은 태화강국가정원 내 명정천(明淨川)과 만회정(晩悔亭)이 있는 지역을 말한다. 풍수지리학으로 따져 산의 모양과 지세가 마치 자라 같다 해서 부르게 된 이름이다. 태화못의 자라가 명정천을 따라 태화강에 나들이하는 모양새다. 목을 움츠린 모양에 비해 길게 보인다는 것은 진보, 진취, 발전, 창조, 개척, 탐험 등 스스로 실천하는 능동적 행동을 의미한다.

오산이 하필이면 명정천과 태화강의 두물머리에 그 지명을 두었을까? 역사 속 울산의 노권(老拳=지역의 노숙한 지식인)들은 무분별한 행동을 하지 않았고, 의미 없는 장소에 함부로 이름을 짓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명정천은 발원지가 태화연(太和淵)이다. 태화지(太和池) 혹은 태화못이라고도 하지만 연(淵)과 지(池) 그리고 못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본질은 ‘태화’에 있기 때문이다. 태화(太和)는 만생(萬生)이 총화(總和)하여 함께하는 이상향의 세계다. 그 때문에 태화라는 용어를 중국에서는 연호로 사용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선덕여왕 재위 때 잠깐 사용했다. 태화는 태평과 풍년, 평화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태화·태평·풍년 그리고 평화는 기본적으로 의식주가 해결돼야 일컬을 수 있는 세월이다. 그 세월을 태평성대 혹은 평화·화평시대라고도 부른다.

태평성대는 자연의 우풍순조(雨風順調)가 필연적이지만, 인간의 분별심과 선입견 그리고 아상이 없는 세월이라야 가능하다. 이는 고금을 막론하고 평화시대 역시 나라가 평온하고 백성이 안정적이면 경작지에서는 격앙가(擊壤歌)가, 거리에서는 태평가 노랫소리가 그치지 않는 세월인 것이다. 그 모두를 해결한 지역이 계변(=울산의 옛 이름의 하나)의 습지였다.

태화강 오산의 지형적, 자연환경적 가치를 인식하는 울산사람은 적다. 그러다보니 외지인은 물론 지역민에게조차 그 가치의 대단함을 소개할 수가 없다. 그 결과 자연히 관심 밖으로 밀려난, 한낱 강가의 장소로만 여겼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가치가 대단함을 실감하게 된다. 다만 그 가치를 알지 못하면 찾지도 못하고 활용하지도 못한다. 현재까지 그런 실정이다. 먼저 오산못을 비롯해 오산광장, 오산다리 등의 이름은 모두 ‘오산’에서 파생됐다.(이런 관점에서 샛강의 이름도 ‘오산샛강’으로 부르면 좋겠다.)

오산 강가 바위에는 자라(鼇), 용(龍), 학(鶴), 관어대(觀魚臺) 등 그림과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오(鼇), 용(龍), 학(鶴) 셋은 그림으로, 관어대(觀魚臺)는 글자로 새겨져 있다. 현재 자라 그림과 관어대 글자는 원형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학은 수년전 중구청에서 복원한 것이다. 하지만 용은 현재도 멸실된 채 시민들로부터 잊혀졌다.

1996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모두가 존재했다. 하반기에 명정천이 정비사업으로 확장되면서 명정천 쪽에 있던 학과 용은 멸실되고 말았다.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 오산 두물머리를 찾을 때마다 왠지 허전함을 감출 수가 없다. 변성퇴적암에 새김의 대상이 된 오(鼇), 용(龍), 학(鶴)은 모두 복되고 좋은 일이 일어나는 징조를 뜻하는 상서로운 동물 ‘서수(瑞獸)’다. 공통점은 물이다. 물은 풍요를 이루는 원천이다. 그 물의 이름이 태화강(太和江)인 것이다. 용 그림 곁에는 용학(龍壑), 학 그림 곁에는 학천(鶴天) 등을 화제(?題)로 쓰고 있다. 이 모두를 아울러 ‘관어대’라 불렀다.

오산은 울산 중구 쪽에 자리하고 있고, 자라의 길게 뺀 목은 태화강으로 향하고 있다. 자라는 ‘물 만난 고기’마냥 풍요를 약속하는 태화강물을 오늘도 목축임하고 있다. 오산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으로 울산의 지속적인 안정과 풍요를 의미한다.

지금부터 울산을 찾는 관광객을 오산으로 안내하여 오(鼇), 용(龍), 학(鶴) 등 서수의 현대적 해석과 관어대(觀魚臺)를 바탕으로 참살이를 연결 지어 부각시킨다면 관광코스의 추가와 관광객 체류시간의 연장으로 이어져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관어대를 생전에 한번이라도 찾는다면 평생을 건강하게 잘 살 것이라고….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 박사·철새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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