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하니’와 ‘우사인 볼트’의 시합
‘달려라 하니’와 ‘우사인 볼트’의 시합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9.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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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익은 만화 음악이 있다. /난 있잖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하늘 땅 만큼 /엄마가 보고싶음 달릴 거야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달려라 하니〕

이진주 작사, 방용석 작곡에 가수 이선희가 부른 한국의 순정만화 ‘달려라 하니’의 메인 음악이다. 한때 어린이들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대단한 호감이 갔다.

자고로 주민등록증이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게 아닌가보다. 만화 캐릭터에게도 주어지는 걸 보니 말이다. 오래전 서울 강동구청에서 ‘하니’에게 준 적이 있는데, 아기공룡 ‘둘리’에 이어 두 번째 캐릭터다.

주인공 ‘하니’는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해외근로자로 파견나간 외톨이 고아다. 빛나리 중학교 신입생으로 갓 입학한 13세 악바리 소녀. 중학교에 입학하자말자 말괄량이에 말썽꾼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뜻밖에도 입학식 날, 자기와 처음 충돌했던 체육복차림의 낯선 아저씨가 담임선생이 될 줄이야!

그에게 낙이라면 오직 달리는 것뿐이다. 그런 하니가 담임선생 홍두깨의 눈에 띄어 육상부에 스카우트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남달리 깊은 만큼 타인에 대한 증오심도 대단한 편이다. 하늘나라 어머니를 생각하며 달릴 땐 어느 누구보다 빨라 단거리 육상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게 된다.

자메이카의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는 너무나 유명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혜성처럼 나타나 100, 200, 400미터 릴레이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운 인류역사상 가장 빠른 사나이. 신장 196cm, 체중 96kg의 거구이면서도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100미터 결승에서 9초58의 기록으로 우승한 총알 같은 선수다.

육상에서 ‘달리기’란, 정면으로 점프하고 착지와 동시에 다시 점프하는 연속과정의 운동이다. 그래서 체중보다 높은 충격을 준다. 잘 달리려면 균형을 맞추어 전신을 움직여 달려야한다. 순발력을 내야 하는 단거리 선수에는 보디빌더에 필적할 정도의 근육질 선수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전력으로 질주할 땐 출발자세에서 상체가 거의 쏟아지다시피 하고, 동시에 무릎을 90도로 구부려 허벅지를 힘껏 끌어올린다. 발 앞꿈치로 바닥을 박차면서 팔도 직각으로 구부린 상태로 반동을 넣어 앞으로 나아간다.

‘달리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축으로 그의 인간, 삶, 글쓰기의 의미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그는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마음을 다잡는다. 죽은 후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단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정말 그는 죽을 때까지 혼신의 의지를 불태우려는 것 같다.

세계적 문학가 하루키는 왜 ‘달리는 작가’가 되었을까? 소설쓰기는 육체노동과 같다고 생각해서 체력과 집중력, 지구력을 키우기 위해 달리기를 선택한 거다. 마라톤 풀코스를 25번이나 완주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30년간 작품 활동을 위한 고통스런 역정과 문학적 성취를 가능케 한 원동력은, 혹독한 마라톤 단련이 아니던가! 그 고통을 극복하며 작가에게 필요불가결한 체력과 집중력, 지구력을 길러왔던 거다.

악바리소녀 ‘달려라 하니’는 빠르고 신나게 달린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빠른 우사인 볼트보다 더 빨랐을 것이리라. 그 힘은 대체 뭘까? 바로 집중력이다. 보고 싶은 ‘엄마’를 향해 두 손 꼭 쥐고 힘껏 달리기 때문이 아니겠나.

인간들이여! 우리들의 몸속에서 졸고 있는 원시성을 깨우고 싶지 않은가? 길 위를 ‘달리는’ 우리들 가슴 속에서, 먼 옛날 수렵시대 우리 선조들의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한번 들어봄이 어떨까?

김원호 울산대 명예교수·에세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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