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타결만 기다리고 있심더”
“현대차 타결만 기다리고 있심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9.20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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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약속이 있어 북구 명촌동을 아주 오랜 만에 가게 됐다. 조합원수 5만여 명이 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문과 바로 이어진 곳으로 현대차의 성공신화와 함께 해온 상권이다. 몇 해 전 계속된 조선업 불황으로 울산경제가 휘청할 때도 현대차의 선전으로 이곳은 불황과는 거리가 멀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랬던 이곳도 바이러스의 공격은 피하기 어려웠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이곳 상권도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데 역시나 이날도 거리 전체가 온통 썰렁했다. 코로나19 확산 저지 차원에서는 바람직해보였지만 거리의 표정은 분명 어두웠다.

약속 장소인 고기집도 마찬가지였는데 일찍 도착한 탓에 조금 기다리게 됐고, 그게 지겨워 돌아가는 사정도 알아볼 겸 가게 주인에게 “요즘 어떠시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가게 주인, 이렇고 저렇고도 아닌 딱 한 문장만으로 모든 상황을 브리핑해주더라. 그는 내게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현대차 타결만 기다리고 있심더.”

하긴. 바이러스의 습격에 따른 전 지구적인 불황 속에서 짜더러 무슨 설명이 필요하리. 그의 그 말에 난 생각해볼 것도 없이 자동으로 “그렇죠?”라는 말로 응대를 했다. 하지만 그 가게 주인과 달리 나의 응대는 거기서 짧게 끝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기자였기 때문. 해서 난 그 동안 취재를 통해 알게 된 현대차 올해 임금협상의 상황을 티 안 나게 좀 더 부연설명을 한 뒤 “노사 간 의견대립은 조금 있지만 노사 양측이 코로나 위기에 서로 공감하고 있어서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내 말에 가게 주인은 입가에 살짝 웃음을 보인 뒤 한 마디 더 거들었다. “그렇게 돼야죠. 우리는 당장 먹고살기 어려운데 대기업 직원들은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니 부디 하루빨리 타결돼 같이 좀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고마웠는지 잠시 뒤 많지는 않았지만 육회 한 접시를 서비스로 줬다.

현대차 노사의 올해 임금협상이 추석 전 타결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예년과 달리 한참 늦은 지난달 13일 상견례를 통해 협상을 시작, 이제 겨우 한 달 정도가 지났지만 회사는 이미 제시안까지 냈다. 노사 간 큰 마찰도 없는데 무엇보다 노사 모두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위기에 서로 공감하기 때문으로 보여 진다. 다만 시니어 촉탁 문제가 최대 쟁점이 되고 있는데 지금 분위기라면 곧 노사 간에 원만한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만약 현대차가 추석 전 타결을 이뤄내게 되면 현대차 임금협상 역사에서 아마도 최단기 기록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올해 임금협상에 대해 현대차에 다닐 후배들은 이렇게 기억하지 않을까. 바이러스의 침략에 따른 위기 상황에서 노사가 양보를 통해 최단기에 임금협상을 끝낸 아름다운 해였다고. 개인적으로도 꼭 그렇게 기억되는 해가 되길 바란다. 그날 공짜로 얻어먹은 육회 한 접시가 민망하지 않게.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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