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놓은 시간들을 찾아서 ②
묻어놓은 시간들을 찾아서 ②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9.14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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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갓 장사꾼일까. 은밀하게 태극기를 만드는 할아버지

그 배경으로는 무엇보다도 할아버지가 걸었을 대의적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손자가 강조하듯 그가 자신의 든든한 재력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한 대의적 인물일 수 있는 것이다. 재력가인 만큼 지원 자금의 규모도 상당한 것이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국내외에 걸친 할아버지의 점은 사업처이자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는 셈이다. 사업 현장의 책임자들도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라 수준 여하를 막론하고 독립운동가들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 모습은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의 그것을 떠올리게도 한다. 대한광복회 활동은 대개 군자금 모집을 비롯해 독립군 양성, 무기 구입, 조직의 설치, 친일부호 처단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에 견줄 때 할아버지의 관련 활동은 규모나 목표 등에서 소박한 차원의 그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만주까지 걸치는 넓은 상업망을 독립운동의 조직적 거점으로 삼고 관련한 자금을 모금하는 모습은 의사의 그것에 닮은 것이다. 뒤에서 말할 친일파 처단 활동도 닮은 모습일 수 있다. 더구나 모두가 울산 동향에다 1880년대 전반기에 태어난 동년배가 아니던가. 짐작컨대 그의 독립운동은 박상진 의사의 영향일 수도 있다. 혹시 박의사 조직망의 일원으로 전개한 활동은 아닐까. 장손도 세상을 떠나기 몇 해 동안 그럴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했다. 박상진 의사의 송정리 생가를 찾아 후손을 만나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의사의 직계들의 삶도 하나같이 을씨년스런 그것이 아니던가. 두 인물의 관련성을 알려줄 정보를 어디서도 찾지는 못했다.

할아버지의 국내외 사업처 모두가 독립운동에 관련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왜놈들 감시의 그물망이 공공연할 차원의 그런 활동을 허용할 정도로 느슨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박상진 의사의 항일 거점도 일부 사업처 중심이었다. 그렇더라도 그의 활동이 수준 여하를 떠나서 사실일 경우 그것은 상당한 차원의 독립운동일 수는 있다. 사업 규모가 만주에까지 걸칠 정도의 재력가가 아니던가.

그의 애국·애족적 풍모를 가시화해줄 기록 같은 구체적 증거는 없다. 이를테면 그의 은밀한 지원 대상이 대한광복회나 임시정부인지 아니면 또 다른 항일조직인지를 알 수 없다 최부자와 같은 경우는 은밀한 것이었지만 해방 뒤에는 밝혀졌다. 이에 견주어 할아버지의 경우는 가시적 증거가 없는 탓에 그만큼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대의적 삶과 관련한 전체를 종합 고려해본다면 그런 활동 사실 자체는 분명해 보인다.

애국·애족적 행위로 다음과 같은 현상도 주목된다. 태극기 관련 사건이 그것이다. 언젠가 손자의 할아버지는 자택 등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는 밤이 늦도록 태극기를 만들곤 했다. 거사를 위해서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태극기를 만든다는 것은 삼엄한 강점기에 결코 단순하고 평범한 행위일 수 없다. 남다른 애국심 말고도 담대한 용기며 적극성, 치밀한 지혜 등의 미덕이나 재정적 기반 등을 갖춘 주동자급의 모습일 수 있다.

조직적이고 은밀한 차원에서 태극기를 만든 것은 우리의 경험상 대규모 시위를 준비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독립운동의 다양한 방식 중에서도 평화적인 만세운동을 준비하는 전형적인 장면일 것이다. 3·1만세운동 아니면 6·10만세운동이 그것이다. 여기서 6·10만세운동은 서울지역에 한정된 것이라서 울산지역과는 무관한 운동이다. 그렇다면 할아버지의 태극기 사건은 일단 울산의 3·1만세운동을 준비한 사건으로 이해된다.

울산지역의 3·1운동은 언양, 병영, 남창의 세 곳에서 4월 들어 순차적으로 일어났다. 할아버지 관련 거사가 만일 3·1운동이라면 그것은 그 중의 하나가 된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언양장터의 그것일 가능성이 짙다. 관련 근거들을 아래처럼 추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단위면적당 울산지역처럼 강들이 많은 곳은 없다. 정부 주최 전국강살리기대회를 올 시월에 울산에 유치한 울산강살리기네트워크의 문호성 대표의 단언이다. 도심지를 가로지르는 태화강을 비롯해 동천강, 여천강, 회야강, 외황강의 무려 다섯 개가 이 광역시 안을 흐르지 않던가. 아득한 날 학성의 꼭대기에는 희고 푸른 쌍학이 날아와 춤을 추기도 했다. 밀집된 강들을 따라 풍부한 먹이를 가진 펄들이 여기저기 펼쳐졌다. 풍요한 서식지들이 없을진대 그런 계변천신 얘기며 그에 기댄 울산학춤이 나올 수 있으랴. 조류생태학자이자 울산학춤의 명인인 김성수 선생은 울산지역이 본래 습지였음을 주장한다. 이런 견해들은 다 우리 울산이 지리적으로 강과 식수가 풍부한 조건을 확보한 지역임을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수 부족을 핑계로 위대한 인류문화재를 수장시켜 놓았다. 타성적인 코미디가 반구대 골짝에서 아직 진행 중인 것이다. ▶3편으로 이어짐

이노형 고래문화재단 상임이사·전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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