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리대밭 탐사
십리대밭 탐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9.1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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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쑥대밭’이었다. 큰바람(태풍)이나 큰물(홍수)이 지나갈 때마다 둘러보는 게 습관이지만 이번 태풍의 뒤끝만큼 처참한 광경을 눈여겨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시간을 토요일(12일) 오후 3시쯤으로 잡았다. 코스는 십리대밭교~태화강십리대숲 산책길(중구)~오산못~만회정~가칭 ‘오산인도교’~철새공원(남구)~태화강 전망대로 잡았다. 태화강 십리대밭 탐사가 드디어 시작됐다. 거의 2시간에 걸친 탐사였다.

남구 둔치와 회오리(나선형)다리를 지나 십리대밭교에 올랐다. 그 순간 두 손이 모자에 갔다. 다른 사람도 몸놀림이 비슷했다. 강풍특보도 없었는데 왜 이렇게 세지? 문득 ‘바람과 해님’이 내기하는 동화가 생각났다. 뜻이 ‘해신(海神)’이라는 10호 태풍 ‘하이선’도 떠올랐다. ‘쑥대밭’의 원인을 대부분 ‘하이선’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십리대밭교 아래에선 바람이 잠잠했다. 다리 위에서 체감한 바람은 강바람이 분명했다. 우산을 챙겨왔지만 얼마 안 가서 접기로 했다. 주말 대숲과 강변으로 산책 나온 시민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마다 휴대전화 셔터로 기록을 남겼다.

‘정비의 손길’이 한바탕 스치고 지나간 덕분일까? 강변산책길은 비교적 말쑥했다. 드문드문 피어있는 철 잊은 코스모스 꽃 몇 닢이 강아지풀 더미 속에서 부끄러운 듯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나 대숲의 겉과 속은 너무도 달랐다. 갈가리 찢기고 기역자로 꺾이고 큰대자로 드러누운 대나무의 잔해들이 시야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허연 속살까지 다 드러내야 했을까?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중구 태화동 주민들이 범서읍 서사마을에서 옮겨다 심었다는 ‘맹종죽(孟宗竹) 군락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연상언어들이 꼬리를 물고 부들가루처럼 피어올랐다. ‘폭격 맞은 한강철교’, ‘조물주의 저주’, ‘자연의 심술’, ‘아마추어의 설치미술’, ‘중세병정들의 창검놀이’…? 순간 ‘꺾일지언정 휘지 않는다’던 대나무의 생태풀이가 말짱 거짓말로 들려왔다. ‘대한민국 20대 생태관광지’, ‘울산12경 십리대숲’의 한가운데로 난 대숲산책로는 흡사 제멋대로 휜 대나무들로 치장한 ‘아치형 사열대’ 전시장이었다.

걸음을 멈추고 휴대용 줄자를 꺼냈다. 톱자국이 난 대나무의 지름이 궁금했다. 어른 주먹만큼 큰놈은 줄잡아 8~9cm. 그런데 이게 웬일? 어른 손가락만한 오죽(烏竹)들은 의외로 말짱했다. 어느 생태전문가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대나무는 억지로 솎아내면 큰일 납니다. 은폐처가 못 되니 새들도 보금자리로 삼을 수 없고….” 반론의 여지는 찾아봐도 없었다.

태화강국가정원 대숲의 간벌(間伐) 본보기가 됐다는 전남 담양군 ‘죽록원(竹綠苑)’도 비슷한 태풍피해를 겪었을까? 그런저런 상념에 잠겨있을 무렵 흥미로운 안내판 하나가 시야에 잡혔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AR동화 사용방법’이란 부제도 달렸다. 시에서 누구 들으라고 단 안내판일까?

오산 만회정(晩悔亭) 가까운 십리대숲 초입. ‘2004년 6월 9일’ 날짜도 선명한 ‘에코폴리스 울산 선언’이 객을 반겼다. 바위에 새긴 세 가지 다짐을 셔터로 담았다. 두 가지 다짐은 이랬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환경과 자연생태계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지속발전이 가능한 도시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여 잘 가꾸어진 자연자산을 후손에게 물려준다.”

남구 쪽 피해정도는 그나마 적었다. 어느 쪽이든 ‘국가정원’이라면 뒤처리도 빨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친김에 백서(白書)도 남기라고 조언해주고 싶었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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