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행위’의 메시지
‘상징행위’의 메시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9.0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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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 수행에 입문하여 사십년쯤이다. 백발(白髮)과 백염(白髥)을 선물받았다. 그러나 그동안 일찍 떨쳐버려야 할 분별심(分別心), 선입견(先入見), 아상(我相) 등 고름 같은 것들이 아직도 가사자락(袈裟角)에 악착동자(齷齪童子)처럼 매달려 있다.

이십여 년 전, 지인으로부터 성경을 선물받아 읽기 시작했다. 구약과 신약을 몇 차례 정독했다. 그동안의 공력으로 묵상을 흉내 내고 있다. 그 결과 자기 잘못의 합리화, 은폐, 책임전가, 공격 등 악인의 행동이 점차 선인의 용서와 사랑 그리고 변화와 성장을 꿈꾸는 것으로 변화되고 있다. 특별한 것은 성경을 통해 변화와 성장을 지향하면서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상징행위가 주는 메시지의 의미를 발견한 일이다. 어쩌면 모두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것을 이제라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축복이다.

상징행위는 어떤 사물이나 행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불경>, <성경>, 설화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먼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여호와는 선지자(先知者) 호세아(Hosea)를 통해 상징행위의 메시지를 전했다.

<호세아> 1장 2~3절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여호와께서 호세아를 시켜 하신 말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너는 바람기 있는 여자와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아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저버리고 음란을 피우고 있구나. 호세아는 여호와께 이 말씀을 받고 디불라임의 딸 고멜을 아내로 맞았다.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자…”

고멜은 호세아의 아내다. 호세아와 사이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둔 유부녀다.

<호세아> 3장 1~3절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여호와께서 나에게 이르셨다. 너는 정부와 놀아난 네 아내를 찾아가 다시 사랑해 주어라.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신에게 마음이 팔려 건포도 과자 따위나 좋아하는데도 이 여호와가 여전히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해 주어라. 나는 은 열다섯 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을 가지고 가서 그 여인을 산 뒤에 이렇게 일렀다. 당신은 내 아내니 다른 남자와 어울려 불의한 관계를 맺지 말고 들어앉아 있으시오. 그렇게 오래 지낸 뒤에야 당신과 한 자리에 들리다.”

호세아는 가출해 정부(情夫)와 놀아난 아내를 찾았다. 은 열다섯 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을 지급하며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했다. 여기서 고멜은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호세아> 14장 1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호세아 14장 2~3절)

다음으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깨달은 자가 선지식(善知識) 일연(一然)을 통해 상징행위의 메시지를 전했다. 《삼국유사》<처용랑망해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서울 밝은 달밤에/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전염병을 옮기는 역신(疫神)이 처용의 아내와 자리를 함께했다. 현장을 목격한 처용은 쿨하게 노래와 춤을 추고 자리를 비켜줬다. 역신은 이를 알고 모습을 나타내 처용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내가 당신 아내의 아름다움을 흠모하여 잘못을 저질렀으나 그대는 화내지 않으니 그 마음에 감동하였습니다. 맹세코 앞으로는 당신의 얼굴이 있는 그림만 보아도 그 문 안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그러면서 역신은 조용히 물러났다. 이 일로 인하여 나라 사람들이 처용의 모습을 그려 문에 붙여 나쁜 악기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참회와 회개이며, 언약이다. 다시는 악인의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이 설화는 바탕은 “본래의 서원을 항상 지키어 세간을 버리지 아니하고 중생들에게 견고한 좋은 벗이 되며(常守本願 不捨世間 作諸衆生 堅固善友)……”(화엄경, 승도솔천궁품)라고 한 깨달은 이의 본래 서원이 바탕이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성경>과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고멜과 역신의 행동에서 참과 거짓을 규명하는 수고로움의 천착에서 벗어나 상징행동의 비유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가리키는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에 집착하는 것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처용설화는 불가항력적인 역병으로 좌절한 백성들에게 전하는 꿈과 희망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코로나19가 빚어내는 시대적 사회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고멜 이야기와 처용설화는 문장에 얽매이기보다 메시지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창궐하는 코로나19 사태에도 속수무책인 현실에서 고멜과 처용설화가 주는 메시지를 두고 묵상한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철새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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