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인턴제’ 유감
‘결혼인턴제’ 유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9.0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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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KBS의 나이 든 분들을 위한 프로그램 ‘황금연못’에 눈이 갔다. 그러고는 놀랐다. 여기서 다룬 이른바 ‘결혼인턴제’란 프로그램이 가부장적 사고의 소유자들에게는 경악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결론은 ‘반대여론 우세’로 기울었지만 최근의 새로운 결혼풍속도를 훔쳐보는 것 같아 한동안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다.

결혼에도 인턴과정이 필요하다? ‘인턴(Intern)’의 정확한 뜻도 익힐 겸 인터넷사전 속으로 잠시 발을 담갔다. ‘레지던트(resident)’와 함께 전공의(專攻醫)로 분류되는 ‘인턴’의 뜻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임상과목의 실무적 기술을 연습하려고 특정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는 면허를 가진 의사’다. ‘결혼’과 ‘인턴’의 접목에 대한 이해를 도우려면 아무래도 약간의 의역(意譯)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냥 쉽게 풀고 싶었다. 고심 끝에 내놓은 뜻풀이는 ‘결혼연습’. 하긴 ‘이별연습’이란 노래제목도 있었겠다.

덕분에 새로운 사실 몇 가지를 더 알게 됐다. ‘결혼인턴제’란 2017년 3월 4일부터 8월 27일까지 방영된 KBS 2TV의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처음 선보인 용어라는 사실, 그리고 ‘결혼인턴제’라는 먼저 말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임의로 규정한 정의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잠시 옮겨보자.

‘결혼인턴제’란 ‘혼인신고 전, 규칙을 정해 놓고 일정기간 같이 살아보는 것.’ 그리고 ‘합의기간 동안 서로가 적합한 배우자인지 평가한 후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는 큰 원칙도 있다. 찬성론자들은 ‘결혼인턴제’가 서로의 성격도 파악할 수 있고 소위 ‘속궁합’도 맞춰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내세운다.

그렇다면 오래전부터 있었던 ‘혼전동거(婚前同居)’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 답도 이미 나와 있다. “혼전동거는 결혼식을 거치지 않고 서로 합의하에 동거하는 것이고, ‘결혼인턴제’란 법적부부와 혼전동거의 중간단계”라고 두부 자르듯 말한다.

이 지론을 따르자면 내외법(內外法)이니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니 하는 고리타분한 용어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꼰대’ 소리라도 안 들으려면 ‘눈감고 귀 막고 입 다물고’ 꾹 참고 지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있겠는가.

그러고 보니 ‘결혼인턴제’는 약 40년 전 유럽여행 중에 처음 들은 기억이 있다. 1970년대 후반 스위스를 여행할 무렵 한국인 가이드가 그쪽 동네의 놀라운 풍습을 천연덕스럽게 들려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스위스 사람들은 만20세 성년(成年)이 되면 부모 곁을 떠나 일정기간 독립생활로 자립의지를 길러야 하고 배필이 될 인생파트너도 이 기간에 구해야 한다. ‘배필 구하기’ 즉 ‘결혼인턴제’를 이 기간에 체득하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가이드의 끝말이 한국인 여행객들을 한 차례 더 놀라게 했다. 결혼식 청첩장을 결혼인턴 과정에서 탈락한 복수의 혼전동거(premarital cohabitation) 대상들에게도 대수롭잖게 보낸다는 것.

이 시각에도 인터넷 바다에서는 ‘결혼인턴제’에 대한 다양한 지론들이 파도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혼인신고는 하지 않지만 법적으론 사실혼(事實婚)에 해당되는 거죠.” “사실혼 관계라면 재산분할 권리만 유일하게 인정된다고 하네요.”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배우자의 행동이 맘에 안 들면 협박용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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