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베푸는 일에도 관심 가질 거예요”
“남에게 베푸는 일에도 관심 가질 거예요”
  • 김정주
  • 승인 2020.09.0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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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촌을 예술로 물들인 이선애 ‘내 마음 물들이고’ 대표 (‘선 갤러리문화관’ 관장)
이선애 ‘내 마음 물들이고’ 대표
이선애 ‘내 마음 물들이고’ 대표

 

미소가 곱다. 미소만이 아니다. 마음씨도 곱다. 자연을 닮아서일까. ‘자연’과 ‘자연색’은 그녀의 존재이유다. 남들이 ‘천연염색’이라고 해도 ‘자연염색’이란 표현이 더 좋다. 자연에 둘러싸인 울주군 두동면 은편마을이 고향이다.

자연염색 공방 ‘내 마음 물들이고’의 이선애 대표. 올해 만나이로 예순셋. 그래도 그만큼의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동심의 세계에서만 머물러온 탓일까. 그러나 그녀에겐 꿈이 있었고, 그 꿈 때문에 생긴 마음의 주름도 있었다. 올해로 개관 스무 해를 맞이한 ‘내 마음 물들이고’(울주군 웅촌면 정주권로 338/검단리 616-3). 그 꿈의 조각들이 올올이 쌓여 조각보로 거듭난 그녀의 2층 작업실을 찾았다. 칠석이 사흘 지난 8월 28일 낮.

‘내 마음 물들이고’는 첫 수필집 이름

공방 이름이 참 예쁘다며 말문을 연다. 수줍은 듯 말을 받는다. “제 수필 제목과 첫 수필집 이름이 바로 그것이죠.” 55편의 수필을 담은 이 대표의 첫 수필집 ‘내 마음 물들이고’가 처음 선보인 때는 2010년 6월 5일. 이날 그녀는 새로 차린 공방 옆 ‘선 갤러리(문화관)’에서 수필집 출판기념회와 3번째 ‘이선애 자연염색전’을 동시에 가졌다.

“천연염색 작업을 하고, ‘내 마음 물들이고’와 ‘선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틈틈이 썼던 글을 한 권으로 엮어봤던 거죠. 앞으로도 자연과 생활에 대한 글을 쓰며 수필가로도 활발히 활동할 거예요.” 10년 전 인터뷰에서 ‘수필가 이선애’가 남긴 말이다.

이 대표는 한동안 ‘울산수필’ 동인으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울산문인협회 외에 울산미술협회. 울산울주공예가협회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 대표는 개인전 ‘이선애 염색작품전’을 오는 5일부터 25일까지 공방과 갤러리에서 갖는다. 벌써 열 번째다. 홍보 팸플릿에 올린 수필 ‘내 마음 물들이고’의 두어 구절에 시선이 간다. “때론 지치고 고단할 때 고운 色으로 하여 마음이 한없이 정갈해진다. 자연에서 얻은 색상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山과 들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2013년 6월 9일 ‘선 갤러리’ 앞마당에서 열린 ‘제3회 웅촌 왕도읍문화제 개막식’ 테이프커팅 장면. 신장열 당시 울주군수 오른쪽에 서 있는 한복차림의 여성이 이선애 ‘내 마음 물들이고’ 대표.
2014년 4월 ‘선 갤러리’ 실내에서 열린 ‘제4회 웅촌 왕도읍문화제 개막식’ 축하연. 이날 연회에는 신장열 당시 울주군수와 ‘웅촌예술인협회’ 회원들이 자리를 같이했다.
 

 

‘왕도읍문화제’ 초기, 오해로 반감 사기도

이선애 대표가 처음 차린 공방은 물소리, 새소리가 귀를 간질이던 웅촌 운암산 기슭의 어느 호젓한 산자락. 지인의 권유로 눌러앉은 뒤 6년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새로운 결심을 내린다. 자리를 검단마을로 옮기자! 그래서 다시 둥지를 튼 곳이 검단초등학교 바로 옆 지금의 거처다. 공방 ‘내 마음 물들이고’와 ‘선 갤러리문화관’이 한 울타리에 들어서는 기초가 마련된 것.

“갤러리 이름을 왜 ‘선’이라 했을까요? 제 이름에 ‘선’자가 들어있고 영어로 ‘SUN’(태양)이란 의미도 겸하니까요.” 그러면서 웃는다, 조용하게.

14년 전만 해도 공방 주위는 촌가 몇 채만 자리를 지킬 뿐 적막강산이 따로 없었다. 의욕이 샘솟았다. 이 유서 깊은 마을을 나라도 나서서 널리 알리자. 우시산국(于尸山國)의 도읍지 웅촌 검단마을이라면 자부심부터 느껴지고 적석총, 운흥사 터, 석천이씨 고가와 같은 역사문화유적도 즐비하지 않은가. 이 대표는 황무지를 개척하는 심경으로 영토 확장의 꿈을 차근차근 실천해 나갔다.

그러나 그 앞에는 꽃길만 펼쳐진 게 아니었다. 마음고생이 시작됐다. “힘들어 몇 번이나 그만둘까도 했었죠. 사람관계도 힘들었고….” 진짜 힘든 일은 중상모략 수준의 오해였다. “‘웅촌 왕도읍문화제’를 처음 열 무렵 (보호구역에 묶이면) 재산권을 침해당한다며 반대가 엄청났죠. ‘문화제(文化祭)’를 ‘문화재(文化財)’로 잘못 이해한 데서 온 오해였나 봅니다.” 나중에 행사 이름 뒤끝을 ‘~축제’로 바꾼 것도 그런 씁쓸한 배경 때문이었다. (제1회 웅촌 왕도읍문화제는 2011년 6월 11~18일 선갤러리와 검단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펼쳐졌다.)

2014년 4월 ‘선 갤러리’ 실내에서 열린 ‘제4회 웅촌 왕도읍문화제 개막식’ 축하연. 이날 연회에는 신장열 당시 울주군수와 ‘웅촌예술인협회’ 회원들이 자리를 같이했다.
2013년 6월 9일 ‘선 갤러리’ 앞마당에서 열린 ‘제3회 웅촌 왕도읍문화제 개막식’ 테이프커팅 장면. 신장열 당시 울주군수 오른쪽에 서 있는 한복차림의 여성이 이선애 ‘내 마음 물들이고’ 대표.

 

검단-곡천마을, ‘웅촌 예술인촌’ 발돋움

그러나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이 ‘웅촌 예술인촌’의 태동으로 이어질 줄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지난달 기준, 웅촌 검단-곡천마을 일원에는 입소문을 타고 모여든 문화예술인 50명이 남부럽잖은 예술인촌을 이루고 있다. 장르도 조각, 도예에서 한국화, 서양화, 염색, 옻칠공예, 목공예, 한지공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편. 이들은 자연친화적 작업실 속에서 저마다의 예술혼을 불태우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입소문은 울주군청에도 전해졌고, 이는 곡천-검단리를 중심으로 한 웅촌지역이 도시재생뉴딜사업의 새 거점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11월 7일 이선호 울주군수 주재 하에 ‘웅촌 도시재생 뉴딜사업 활성화계획 수립용역 착수보고회’가 열린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밑그림을 보면 울주군은 곡천-검단리 일대를 역사·문화·예술인을 잇는 ‘문화거점지역’으로 변모시킬 계획이다. 그 속에는 예술인프라를 ‘웅촌예술인협회’와 손잡고 구축하는 구상도 들어있다. 검단리유적 등이 전시될 3층 규모의 ‘우시산국 박물관’(연면적 2천㎡) 조성사업도 그 곁가지의 하나. 덧붙이자면, 약 6년 전 설립된 ‘웅촌예술인협회’(현 회장 이인행, 조각가)도 이선애 초대회장을 빼놓고는 이야기를 이어가기 힘들다.

“20~30분이면 부산·양산서도 찾아올 거리”

“생각해보니, 위치를 참 잘 잡았다 싶어요. 울산시내와 양산, 부산도 차로 20~30분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죠.” 사실이 그렇다. 양산 통도사도 20분이면 갈 수 있다. 어찌 보면 지역 사이를 이어주는 교량인 셈이다. 울산사람이 주된 고객이지만 부산 해운대와 양산 서창·덕계에서도 찾아주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내 마음 물들이고’ 2층에서 취급하는 품목 작품성 짙은 생활소품과 자연색으로 물들인 한복의상. 바느질과 소품 제작은 대부분 전문가의 몫. 하지만 디자인과 자연염색은 하나부터 열까지 이 대표의 책임이다.

그녀의 또 다른 이름은 ‘선 갤러리문화관 관장’. 이 대표는 부산 경성대에서 ‘공예디자인’을 전공한 78학번의 재원이다. 스스로 찾아간 부산 ‘색깔사랑 섬유예술소’에서는 섬유연구원으로도 일했다.

그런저런 내공이 쌓여 그동안 상을 여러 번 받았다. 울산공예대전 대상(2016), 전국공예대전 장려상(2016), 대한민국공예대전 특별상(2007), 울산관광기념품전 은상(2007)도 수상경력의 일부. 2010년에는 ‘울산시 우수공예업체’로 지정됐고, 2010~2016년에는 ‘울산시교육청 천연염색 지정 교육기관’ 역할도 거뜬히 해냈다.

스승 박영혜 색깔사랑 소장, ‘청출어람’ 칭찬

이 대표가 실력 있는 공예가로 자리를 굳히기까지는 부군 성휘용(69)씨의 외조(外助)가 의외로 컸다. 그는 아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든든한 후원자가 돼주었다. 현대중공업 중견간부로 퇴사한 이후 경남 고성의 S조선에서 전무로 봉직했고, 지금은 아내의 뒷바라지에 새로운 보람을 느끼며 산다는 게 이 대표의 귀띔.

남을 돕는 일에도 시간을 쪼개고 싶다는 그녀의 종교는 기독교. 검단마을 붙박이가 된 뒤로는 강남교회(남구 삼산로 75) 대신 웅촌교회(웅촌면 새초천길 85)에 적을 두고 있다.

그녀의 오늘을 있게 한 박영혜 색깔사랑 섬유예술소장(부산시 공예명장 11호)은 ‘이선애 염색작품전’ 열 번째를 앞두고 이런 말로 격려한다. “스승과 제자로 출발하여 이제 같은 길을 한 걸음씩 함께 나아가는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중국의 사상가 순자의 권학(勸學)편에 나오는 청출어람(靑出於藍=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 방수위지이한진수(氷水爲之而寒眞水=얼음은 물이 이루었지만 물보다 더 차다.)! 제가 못다 이룬 꿈을 이렇게 대신해 줘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글·사진=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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