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업 성공의 지름길은 ‘나보다 공동체 먼저’란 정서”
“마을기업 성공의 지름길은 ‘나보다 공동체 먼저’란 정서”
  • 김정주
  • 승인 2020.08.1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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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령 울산마을기업지원단 단장
박가령 울산마을기업지원단 단장.
박가령 울산마을기업지원단 단장.

10년째 휴일도 반납…국무총리 표창 영예

그를 한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어쩜 저리 자그마한 체구에서 봇물 같은 열정이 저렇게도 넘쳐나지?”

1남 1녀를 둔 50대 초반의 워킹 맘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박가령 울산마을기업지원단장(52). 그에게는 지지난해부터 ‘울산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장’이란 직함도 따라다닌다. 그만큼 행동반경이 몇 배나 넓어졌다. 늘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정해진 퇴근시간이 그의 일과표엔 없다. 때론 토요일, 휴일 반납도 밥 먹듯 한다. 2001년 4월부터 10년 넘게 그런 생활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눈은 새벽 1시쯤에 붙인다 해도 기상은 아침 6시를 넘기지 말아야죠. 준비할 일이 늘 많아서인데, 제 스스로 ‘고3 수험생’이라고 부른답니다.”

일터인 울산경제진흥원에 출근하기 전까지도 일구덩이에 파묻히는 건 이제 습관으로 굳었다. 상담 준비만 해도 그렇다. 모르는 분야는 예습이라도 해두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만큼 책임의식이 강하고 일욕심도 많다.

그런 ‘애살’ 즉 일에 대한 승부욕이 그에게 ‘국무총리 표창’의 영예를 안겨 주었는지도 모른다. “귀하는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통하여 국가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2020년 7월 1일 국무총리 정세균.” 그 뒷부분, 은빛 무궁화 휘장 바로 옆 글씨도 시선을 빼앗았다. ‘이 증을 국무총리 표창부에 기재합니다.’

그의 표창 공적은 크게 세 가지다. △마을기업지원단 운영 전반 △사회적경제 활성화 및 판로 지원 △울산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 운영을 통한 행정 및 민간지원활동 확대 강화가 그것. 개인적으론 행정안전부 장관상 2회,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 1회의 수상경력이 있지만 이번 수상만큼은 ‘가문의 영광’ 급으로 여기는 듯했다.

박가령 울산마을기업지원단장이 지난달 27일 ‘2020 사회적경제 유공 분야 포상 전수식’에서 받은 국무총리 표창장.
박가령 울산마을기업지원단장이 지난달 27일 ‘2020 사회적경제 유공 분야 포상 전수식’에서 받은 국무총리 표창장.

 

일·출장 많아 얻은 별명 ‘朴다르크’·‘朴길동’

일벌레, 출장벌레가 아니랄까봐 박가령 단장은 재미난 별명을 둘씩이나 얻었다. 늘 바지런하다고 ‘朴다르크’, 출장 많이 다닌다고 ‘朴길동’이란 닉네임을 선물처럼 받은 것. 그리고 그에게는 그림자같이 따라다니는 주제어도 몇몇 있다. ‘마을’과 ‘공동체문화’, ‘사회적경제’, ‘도시재생’, ‘주민자치’, ‘사회혁신’ 그리고 ‘자문’과 ‘컨설팅’, ‘강의’가 그것들이다. 이런 용어들과 씨름하는 것이 이젠 일과(日課)이자 월과(月課), 연과(年課)가 된 기분이다. 그중에서도 ‘마을’과 ‘공동체문화’, ‘사회적경제’는 생활신조인양 입안에서 굳어 버렸다.

이해를 도울 겸 2010년대의 새로운 화두 ‘사회적경제(Social Economy)’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갈 필가 있겠다. ‘에듀윌 시사상식’은 이 용어를 ‘양극화 해소와 일자리 창출 등 공동이익과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사회적 경제조직이 상호협력과 사회연대를 바탕으로 사업체를 통해 수행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을 일컫는 말’로 정의한다.

이 무렵 사회적경제 바람을 타고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 이른바 ‘사회적경제기업 4종 세트’. 흥미로운 것은 4가지 사회적경제기업의 주관부처가 서로 다른 점이다. ‘마을기업’은 행정안전부가, ‘사회적기업’은 고용노동부가, ‘협동조합’은 기획재정부가, ‘자활기업’은 보건복지부가 떠안고 있는 것. 그래도 10년 실무경험에서 우러난 박 단장의 풀이는 이해가 한결 수월하다. “제가 강의할 때 주로 하는 설명이죠. 저는 ‘사회적기업’을 ‘힘들 때 도와주고, 이끌어주고, 사회의 흐름에 맞춰 같이 성장하고 변화해 가는, 사회의 친구 같은 기업’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5월 중순 울산경제진 흥원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마을기업 아카데미’의 제17기 수료생들이 힘찬 전진을 다짐하고 있다.
지난 5월 중순 울산경제진 흥원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마을기업 아카데미’의 제17기 수료생들이 힘찬 전진을 다짐하고 있다.

울산 마을기업 49곳… 다부진 ?小기업

2020년 8월 기준 울산의 마을기업은 49개사. 전국 1천559개사에 비하면 너무 적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박 단장의 결기를 닮아서일까, 어느 하나 다부지지 않은 마을기업은 없다. 인터뷰가 진행된 ‘주식회사 아늑한’(중구 태화로 291) 역시 그런 마을기업의 하나.

박 단장에겐 바로 그런 점이 큰 자산이자 자부심이다. 이런 때는 연약한 젖먹이를 인큐베이터에서 어렵사리 살려낸 어머니의 심정으로 돌아가 있지는 않을까. ‘예비’ 단계를 거쳐 어엿한 마을기업으로 우뚝 서기까지 들인 공을 생각한다면, 그럴 자격이 그에게는 충분히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총리실 공적조서에 나타난 박 단장의 업적은 그의 노고에 대한 실감나는 대변 같은 것. ‘마을기업 및 시민 대상 교육 1천189명, 컨설팅 1천778회 진행.’ 그 속에는 마을기업 설립전교육, 전문교육, 정기간담회, 탐방, 공유워크숍도 포함된다. 아울러 2019년 한해의 ‘마을기업 및 사회적경제 판로·마케팅 지원’ 실적은 287개사, 2억4천564만원에 이른다. 이 모든 일들을 박 단장은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챙겨 왔다. 朴다르크답게….

다만 한 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국무총리 표창의 길을 열어준 것은 행정기관이 아니었던 것. 그래도 박 단장은 그런 내색을 애써 감추려는 것 같았다. “마을기업을 지원하는 전국 17개 기관의 모임에 ‘전국중간지원협의회’란 민간단체가 있어요. 표창 추천은 거기서 해 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답니다.” 어찌 보면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경이 작용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난달 30일 선진지 견학차 울산을 찾은 창원 으뜸마을의 ‘리더’들이 이예로 아래 인도교에서 잠시 비를 피하는 모습. 맨 오른쪽이 이들을 인솔한 박가령 단장,
지난달 30일 선진지 견학차 울산을 찾은 창원 으뜸마을의 ‘리더’들이 이예로 아래 인도교에서 잠시 비를 피하는 모습. 맨 오른쪽이 이들을 인솔한 박가령 단장,

 

계약직, 업무수요 따라 구·군 이직 늘어 문제

엄밀히 말하면 울산경제진흥원 소속 울산마을기업지원단은 행정안전부-울산시의 위탁을 받아서 사업을 추진하는 ‘중간지원기관’ 같은 곳. 그러기에 대통령 표창은 숫제 엄두 밖이었다. 그래도 국무총리 표창을 박 단장이 받은 것은 대단한 내공 덕분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안타까운 속사정이 드러난다. “일거리가 많아도 정직원은 겨우 2명뿐입니다. 나머지는 수탁사업 규모에 따라 수시로 뽑는 계약직인데 이분들이 문제예요. 사회적경제나 도시재생에 대한 업무수요가 늘어나면서 도중에 자치구·군으로 이직하는 일이 부쩍 많아진 거죠. 그러다 보니 지원단, 지원센터를 스펙 쌓기 쯤으로 알게 되고, 결국은 업무추진의 맥이 끊기고 마는 셈이죠. 공무원 TO부터 늘리는 게 급선무란 생각이에요.” 박 단장의 하소연 같은 귀띔이다.

박 단장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다고 했다. 10년 4개월의 경험담이었다. “마을기업이란 공동체 사업을 위한 주민공동체라고 봅니다. 그런데 마을기업 하겠다고 공동체를 억지로 만들면 반드시 분란이 일어나는 걸 수도 없이 보았죠. 협동하기 위해 조합을 만든다면 몰라도 조합부터 만들어놓고 나중에 협동하겠다고 하면 안 되기 마련입니다. 어려워도 문 닫지 않는 기업이 되려면 우선 공동체가 튼튼해야 하고, 그러려면 나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정서를 지닐 필요가 있습니다.”

친정 춘천 출장길이 고마운 ‘마을기업 버팀목’

박 단장의 말에는 굳은 신념이 묻어나 있었다. DB그룹 계열사 13년 봉직의 노하우가 그 바탕에 숨어 있어서일까. 중간에 문을 닫는 기업은 성장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란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마을기업 전도사’, ‘마을기업 버팀목’이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이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강원도 원주가 고향이지만 어머니와 여동생 내외가 살고 있는 친정은 호반의 도시 춘천. 어쩌다 오르게 되는 춘천 출장길은 그래서 더 반갑고 고맙다. 맏아들은 일본 기업에 다니고 있고, 막내딸은 현재 고1에 재학하고 있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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