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 의식’의 다양성
‘집들이 의식’의 다양성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8.0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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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민 비서실장을 포함해 비서실 산하 수석비서관 전원 사의 표명 사태를 부른 핵심은 부동산 파동이었다. 정부가 18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지난해 12월 16일 노 실장은 청와대 비서관급(1급) 이상 고위 공직자들에게 이듬해 7월 말까지 다주택을 처분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정부는 이후에도 계속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시장 혼란은 가중됐다.”(한겨레. 2020.8.7일자). 여기서 부동산은 곧 집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자기 집을 갖는다는 것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인식된다. 더구나 누군가가 넓은 정원이 딸린 큰집을 지어 입택(入宅) 즉 ‘집들이’에 초청한다면 초청받은 사람 대부분은 기대와 설렘의 기분을 맛보게 될 것이다.

집을 짓거나 사서 입택하는 집들이 의식의 목적은 모두 삿된 기운을 몰아내고 경사스러움으로 나아간다는 벽사진경(?邪進慶)에 있다. 더불어 무병장수(無病長壽)와 안과태평(安過太平)의 기원도 있다. 전통 민속에서는 우리에게 과거의 사회적 삶을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재의 변화도 읽을 수 있다. ‘옛것을 익혀서 새로운 것을 안다’는 의미를 지닌 사자성어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을 가끔 듣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현대의 삶에 전통을 접목시켜 현재의 삶을 확대·발전시키면서 활용성을 높이려는 창조적 실천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맹목적인 전통 답습은 ‘고집’, ‘꼰대’라는 달갑잖은 말을 듣기도 한다. 전통 재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집들이’ 문화는 입택(入宅), 안택(安宅) 등 전통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화로 지속되고 있다. 집들이와 입택은 집을 짓거나 사서 살면서 치르는 문화와 의식행사다. 집들이는 친척, 친구, 지인 등을 초청해서 벌이는 사교·친교의 문화행사다. 안택은 무병·장수·복덕 등 가신(家神) 혹은 성주신에 대한 소원(所願) 의식이다. 2020년 팔월 일일, 지인의 집들이 및 안택제에 초대받았다. 현대생활에서 좀처럼 접하기 쉽지 않은 행사이기에 기꺼이 응해 울산학춤을 추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목적은 같으나 문화현상이 다른 유교, 불교, 소리, 민속, 무속 그리고 무용의식 등 ‘집들이 의식’의 다양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교에서는 길일을 택해 사당을 찾아 조상님께 자손의 입택 혹은 안택의 연유를 알리는 고유제(告由祭)를 거행한다. 고유문(告由文) 즉 축문(祝文)을 낭독해 조상과 가옥신(家屋神)인 성주신(成主神)에게 알린다.

불교에서는 언제든지 부처님께 입택 및 이사의 연유를 알리는 고불식(古佛式)을 한다. ‘입택고불식’이란, 집을 사서 혹은 이사를 해서 입택(入宅) 혹은 입주(入住)했다는 사실을 평소 다니는 사찰의 대웅전 부처님께 고하는 의식이다. 스님을 집에 초청해서 ‘입택고불식(入宅告佛式)’을 거행하는 경우, 작법승(作法僧)은 목탁, 요령, 태평소, 소라나팔 등 소리 내는 사물(四物)과 악기를 사용한다. 삿된 기운을 내쫓는 작법에는 소리작법이 벽사력(?邪力)을 갖기 때문이다.

경기민요 잡가 <장기타령>에는 안택 고사의 결과를 잘 표현하고 있다. “계명산 내린 줄기/ 학의 등에 터를 닦아/ 앞으로 열두간 뒤로 열두간/ 이십사간을 지어 놓고/ 이 집 진 지 삼 년 만에/ 고사 한 번 잘 지냈더니/ 아들을 낳으면 효자 낳고/ 딸을 낳으면 효녀로다/ 며느리 얻으면 열녀 얻고/ 말을 놓으면 용마 되고/ 소를 놓으면 약대로다/ 닭을 놓으면 봉이 되고/ 개를 놓으면 청삽사리/ 네눈백이 안마당에 곤드러졌다/ 낯선 사람 오게 되면/ 커겅컹 짖는 소리/ 지전 깔죽이 물밀듯 하누나 에∼”(장기타령 2절 전문)

민속에서는 <성주풀이>를 한다. 성주풀이는 집안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고 믿는 가신(家神)이 중심이 된다. 성주신은 단순히 건물로서의 집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운수를 관장하며, 그 가정을 총체적으로 책임지는 가장(家長)을 상징한다. 성주신이 기거한다고 여기는 곳은 집의 중심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인 대들보다. 따라서 성주신은 가옥을 상징하고 ‘집’이라는 말의 대명사로도 쓰인다. 예를 들어 집을 새로 지었을 때 “새 성주님을 모셨다”고 말한다. 성주풀이는 성주 혹은 가신으로 상징되는 대들보의 이력을 풀이한 것이다. “성주야 성주로구나/ 성주 근본이 어디메뇨/ 경상도 안동땅의 제비원의 솔씨 받어/ 거지봉산(擧之封山)에 던졌더니// 그 솔이 점점 자라서/ 다박솔이 되었구나/ 다박솔이 자라서 청장목이 되었구나/ 청장목(靑腸木)이 자라서 황장목(黃腸木)이 되었구나, 황장목이 자라서 도리기둥이 되었네…”(생략. 김덕명 소리)

무속에서 입택 혹은 안택 굿 의식은 집안의 터주를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굿을 말한다. 안택굿에 무용의식은 잘 알려지지 않은 집들이 벽사진경 의식이다. 집들이에서 울산학춤을 춘 의미를 정리했다. 인문학적으로 학은 부리가 예리하고 길다. 길고 예리한 부리는 삿된 귀신의 눈을 찔러 쫓는 축귀력(逐鬼力)을 갖는다. 또한 학의 넓고 큰 두 날개는 마치 승려의 장삼 같아서 무병장수, 만사여의형통(萬事如意亨通), 안과태평을 부채질하는 주술적 의미를 갖는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 박사·철새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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