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댐 다녀온 이야기
대곡댐 다녀온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8.0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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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따라 강남 가는 셈치고 오랜만에 먼 길 떠나는 행장을 꾸렸다. 지난 7일 점심나절, 닷새 만에 열린 언양장을 뒤로하고 물고문을 당한다는 국보 285호도 볼 겸 반구대 마을로 떠났다. 모처럼 비가 그쳐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해는 머리끝까지 심술 채워 넣기에 바빴다. 바위그림 보러 가는 오솔길은 온통 희뿌연 안개 속. 영화 ‘무진기행’ 속으로 소환당하는 기분이 바로 이런 걸까.

오솔길 양옆으로 드문드문 내걸린 현수막이 시신경을 건드린다. 무슨 주의주장을 담았을까. 가며오며 집히는 대로 휴대전화에 옮겨 담는다. 썩은 나무 밑둥치 가장자리, 오렌지색 선명한 버섯 한 토막도 사진곳간 한 구석을 차지한다. ‘우후죽순’이란 말은 들었어도 ‘우후버섯’이란 말은 왜 못 들었지? 혼잣말의 묘미가 제법이었다. 현수막 글귀에 눈길을 주며 걸음을 재촉했다. 글귀 뒤끝마다 단체이름이 단짝처럼 달려 있었다.

“울산의 미래 먹거리, 대곡천이 답이다!-헌양(언양) 사람들” “대곡천 재자연화로 암각화 살려내자!-환경운동연합” “대곡천은 흐르고 싶다, 사연댐을 해체하라!-울산강살리기네트워크” “반구대암각화 보존과 세계유산 등재를 기원합니다-서울산미래전략연구소” “반구대암각화 구출하고 유네스코 등재하자!-울산내일포럼” “세계유산 우선등재의 길, 수문설치가 답이다.-반구대암각화 시민모임” “울산의 미래 먹거리, 반구대암각화가 답이다.-울주정책포럼” “울산의 물 문제와 암각화 보존대책, 정부가 해결하라!-맑은물·암각화대책시민운동본부” “반구대암각화 보존과 세계유산 등재를 기원합니다-울산사랑모임“ “국민이 명령이다, 사연댐을 열어라!-반구대암각화구하기운동본부” “사연댐 여수로 철거해 암각화를 구해내자!-울산시민연대” “GO! UNESCO! 반구대암각화를 유네스코로!-(사)태화강보전회” “반구대암각화 보존에 국격이 달렸습니다-반구대암각화 시민모임”

시야에 잡힌 것만도 단체 12개에 현수막 13장이다. 그 목소리가 하나로 모이면 대곡천 전체가 떠나갈까? 물고문이 십 수년째라는데 결론은 아직 왜? 상념에 젖은 사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게 한 무엇이 있었다. 야외용 확성기 소리…. “댐 방류에 따라 하천 수위가 상승하고 급류가 발생해 위험하오니 댐 하류에 계시는 분들은 하천 밖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대곡댐 수문 개방을 알리는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의 말. 시각은 오후 3시부터, 방류량은 초당 35톤이라고 했다.

서둘러 점심을 마치고 대곡박물관으로 차를 몰았다. 박물관에서 ‘엎어져 코앞’인 ‘K water 울산권지사’ 쪽 양해를 구한 다음 곧장 대곡댐 수문개방 현장으로 달려갔다. 장관이었다. 바지를 걷어 올린 3개의 수문이 가두어 놓았던 댐 물을 은빛 폭포수처럼 여수로로 쏟아내는 중이었고, 바로 옆 소수력발전소도 비슷한 행위를 따라하는 듯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대곡댐 수문 개방은 1년에 한 번 있기 힘들 정도로 드문 일. “재작년엔가 태풍 콩레이(Kong-rey)가 내습했을 때 딱 한번 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뒤늦게 만난 대곡박물관 신형석 관장의 귀띔이었다.

한나절을 같이 보낸 지인이 돌아오는 길에 타박을 주듯 중얼거렸다. “딱 봉이 김선달 하는 짓이지. 집청정 앞에 함부로 처박아놓은 온갖 쓰레기(댐 쪽에서 떠내려 온)부터 치울 일이지….” 소수력발전소를 자급용으로 수시로 돌린다는 K water 쪽 사람들더러 귀담아들으라고 일부러 하는 소리 같았다.

행운은 다음날(8일)에도 이어졌다. 이번에는 오후 5시부터 사연댐 여수로에서도 물이 흘러넘치더라는 소식과 현장사진을 또 다른 지인 B씨가 보내온 것. 대곡댐이 기침을 하면 사연댐이 감기를 앓는, 둘은 그런 사이일까?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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