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성곽도시… 풍부한 문화·역사자원을 관광자원으로”
“울산은 성곽도시… 풍부한 문화·역사자원을 관광자원으로”
  • 김정주 기자
  • 승인 2020.08.04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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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혁 제8대 울산연구원 원장
임진혁 제8대 울산연구원 원장
임진혁 제8대 울산연구원 원장

 

‘시의회 인사청문 1호’… 정식취임 1주년

‘임진혁 원장’ 하면 떠오르는 말에 ‘인사청문회’가 있다. 국회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임명 전 통과의례를 울산에 지방자치가 뿌리내린 이래 처음으로 거친 인물이기 때문이다. 시의회가 인사청문 보고서를 채택하고 송철호 울산시장이 임명장을 수여한 것은 지난해 7월 26일. 그로부터 엿새가 지난 8월 1일 그는 당당하게 취임식을 가졌고, 임기 3년의 제8대 울산발전연구원장 업무를 정식으로 시작했다.

“취임식을 가진 지 만 1년이 되었군요.” 임진혁 울산연구원장(68, UNIST 명예교수)은 인터뷰 일로 서로 만난 날이 묘하게도 취임식 한 돌 기념일이란 점을 상기시켰다. 축하인사는 인사치레로 대신하고 대화는 접견실에서 나누었다.

‘울산연구원’ 명칭에 ‘발전’ 빠져 아쉬움

2001년 출범 당시부터 귀에 익었던 울산시 싱크탱크의 한글 명칭이 ‘울산발전연구원’에서 ‘울산연구원’으로 바뀐 시점은 5월 12일. 이 역시 시의회의 결정을 따른 결과다. 영문 명칭도 ‘UDI’(=Ulsan Development Institute)에서 ‘URI’(=Ulsan Research Institute)로 바뀌었다. 대뜸 소감을 물었다. 조금은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KDI’(한국개발연구원)의 연상 작용을 기대했던 명칭 ‘UDI’가 19년 만에 사라진 데 따른 아쉬움이었을까. 어쩌면 겨냥할 목표 ‘Development’(=발전, 개발)가 사라진 데 따른 허전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기관명 변경은 직제 개편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시와 구·군의 정책과제를 연구로 뒷받침한다는 기관의 목적이 달라진 건 아니다. 경제사회연구실은 ‘혁신성장연구실’로, 환경안전연구실은 ‘시민행복연구실’로, 도시공간연구실은 ‘미래도시연구실’로 문패를 갈아달았다.

“기능적 분류를 목표지향적 분류로 바꾼 거지요.” 임 원장의 말이다. 원장 1인과 박사급 연구직 31인, 사무직 6인, 공무직(사무보조) 15인 등 53명이 연구원을 지탱하는 기둥들이다.

故 심완구 시장 권유로 ‘UNIST 설립’ 참여

한동안 미국식 생활에 젖어있던 임 원장이 고향 울산 땅을 다시 밟은 것은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본능이 동했던 것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전혀 틀린 짐작은 아니었지만 어떤 계기가 있긴 있었다. “교수로 재직하던 미국 대학교(코네티컷주 새크릿하트대)에서 한 학기 안식년을 얻은 김에 서울시립대에서 4개월 남짓 초빙교수 강의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던 2007년 가을, 심완구 시장님(최근 작고)의 전화 한 통이 마음을 통째로 흔들어놓고 말았지요. ‘울산시에서 국립대 설립을 준비 중인데 소개해줄 테니 도와줄 생각이 없느냐’는 그런 권유였습니다.”

임 원장의 유니스트(UNIST·울산과학기술원) 설립준비단 참여와 교수직 수행은 바로 그런 계기를 맞아 시작된다. 타지로 유학을 떠난 것이 1968년이었고, 서울과 미국을 거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때가 2008년 7월이었으니 그야말로 ‘40년 만의 귀향’인 셈이다. 그런 그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국립대 설립준비단 사무국이 들어선 중구 남외동 상가건물 주변의 풍경이 너무도 눈에 익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어릴 때 뛰어놀았던, 우리 집 바로 앞이 거기였으니 안 그렇겠습니까?”

이 무렵의 기억 창고에는 좋은 것들로 그득하다. 대학 설립에 참여해 커리어를 하나 더 추가하고, 고향에서 후학들에게 지식을 물려준다는 사실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교수번호 3호’를 부여받은 것도 특기할만한 일. ‘교수번호 1호’는 조무제 초대 총장, ‘2호’는 정무영 2대 총장이었다.

‘울산 이노베이션스쿨 비전 선포식’이 지난달 18일 울산정보산업진흥원 대강당에서 열렸다.
‘울산 이노베이션스쿨 비전 선포식’이 지난달 18일 울산정보산업진흥원 대강당에서 열렸다.

 

미국 학문탐구 27년 합쳐 ‘타향살이 40년’

임 원장이 태어난 곳은 경주. 그러나 ‘고향은 울산’이라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사람은 태어나고 자라고 살다가 죽습니다. 저는 고향을 어릴 때 같이 놀던 친구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은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병영초등학교(46회)를 나왔고, 울산제일중학교(17회)를 졸업했다. 조용수 반구새마을금고 이사장(전 중구청장)과 김철욱 전 울산시의회 의장은 지금 만나도 농담부터 튀어나오는 중학 동기들이다, 타향살이는 부산과 서울, 미국을 몇 바퀴 도는 여정이었다. 고등학교는 부산고교(24회)를 나왔고, 학문의 길은 서울대 상대(경영학과, 1971~1975)에서 걷기 시작했다. 그 다음 코스는 미국. 하와이 주립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1981~1983)를, 네브래스카 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경영정보학, 1983~1986)를 취득했다.

대학 강의는 뉴올리언즈대 경영대학이 첫 무대였다. 이 대학에서 조교수→정교수 과정(1986~2000)을 거쳤고, 새크릿하트대에서는 강의기간 8년(2000~2008)을 채웠다. 하와이 주립대를 거쳐 새크릿하트대에서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걸린 기간은 자그마치 만 27년. 그래도 그에게서 ‘빠다 냄새’를 맡기란 힘든 일에 속한다. 귀국 후엔 UNIST에서 만 9년(2008~2017, 경영학부 정교수·학술정보처장·교수학습센터장), 포스텍(포항공대)에서 만 2년(2017~2019, 특임교수)을 봉직했다.

학의 매력에 빠져 ‘鶴전도사’ 별명 얻기도

본인도 모르는 임 원장의 별명은 ‘학(鶴=두루미) 전도사’다. 그만큼 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는 얘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계기가 있었다.

“처음엔 학이라면 아는 게 없었어요, 한번은 울산학춤 창시자인 김성수 박사(조류생태학)가 학을 주제로 열리는 콜로키움의 좌장을 좀 맡아달라고 부탁을 해온 겁니다. 여러 번 실랑이 끝에 맡기로 했고, 그때부터 논문이나 칼럼을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신기하고 흥미로운 사실을 너무 많이 알게 됩디다.” (대화 속의 ‘콜로키움’은 울산발전연구원이 2013년에 마련한 학술행사였고, 그 무렵 임 원장은 UNIST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사실, 학에 대한 그의 학문적 열정은 신앙에 가까워 보인다. 울산발전연구원 팀이 2018년도에 이끌어낸 연구용역 결과를 180도로 뒤집어버린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의 역발상적(逆發想的) 접근에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그의 영향력은 울산시로 하여금 ‘학 도입 프로젝트’를 성안하게 만든다. 울산대공원 동물원에 학 한 쌍을 키워 대공원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학의 존재감을 일깨워 주기로 한 것.

이는 조류생태 전문가 김성수 박사의 지론과도 맥을 같이한다. 경북대 박사학위 취득 과정에서 학을 번식시켜본 경험이 있는 김 박사와 그를 전폭 지지하는 임 원장은 울산에서 번식을 통해 학의 개체수를 늘려나간다면 충남 예산의 황새공원을 본뜬 ‘학공원’을 울산에서 전국 최초로 꾸밀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다.  

“때깔 센 병영사람 기질은 尙武정신의 흔적”
임진혁 원장의 으뜸가는 취미는 뜻밖에도 ‘사적지 답사’. 그는 답사를 통해 한국 재발견의 기쁨을 맛본다고 자랑삼아 말한다. “울산에 볼 게 뭐 있나 하는데, 몰라서 그렇지 안 그렇습니다.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아도 관광거리는 무궁무진합니다.”

숱한 답사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주저 없이 울산을 ‘성곽의 도시’라고 단정 짓는다. 울산에 남아있는 성의 종류가 무려 8가지나 되고, 울산만큼 다양한 성곽을 품고 있는 도시는 더 이상 없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 읍성(邑城), 산성(山城), 병영성(兵營城), 수성(水城), 왜성(倭城), 장성(長城), 마성(馬城), 석보(石堡)에 대한 얘기를 소상하게 들려준다.

그의 이 같은 열정은 울산연구원만의 비장의 무기 ‘와우(WOW) 프로젝트’에서 솟아난다. ‘학 도입 프로젝트’도 그 중 하나. “풍부한 울산의 문화·역사 자원을 찾아내서 울산의 도시 이미지를 ‘문화관광도시’로 확 바꿔 나가자는 거지요.” 그런 말끝에 자신도 속한 ‘병영사람’ ‘기질론’도 슬쩍 들먹인다. “병영사람들 보고 ‘때깔이 세다’고 하는데, 옛날 같으면 병영이 군사 조련하던 곳 아닙니까? 그런 기질이야 당연히 상무(尙武)정신의 흔적이라 해야겠지요.”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장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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