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안택제(安宅祭)
어떤 안택제(安宅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8.02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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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체험이었다. 우리 민속 한 편을 눈으로 익히면서 가슴에 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뜻밖의 행운이기도 했다.

‘8월 1일 오후 4시 30분, 울주군 두서면 수정길 167-23, 덕장산방(德藏山房)’. 같이 가자는 제의를 세 차례 받고는 결심을 굳혔다. 지인의 신세를 지면서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을 분위기부터 살폈다. 여기저기 산허리를 차고앉은 펜션 급 주택 여러 채가 신흥개발지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이윽고 식전행사로 거창한 의식이 하나 열리기 시작했다. 잿빛 승복(僧服)차림의 승려 네댓 분과 악기가 한데 어울려 내는 엄청난 굉음은 산골마을 전체를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어떤 행사일까 싶어 축하화환에 시선을 꽂았다. ‘축 입택’(祝 入宅), ‘축, 갤러리 개관’…. 참, 철제 대문 왼쪽에 ‘덕장산방’이란 문패가, 오른쪽엔 ‘알프스사랑방’이란 문패가 있었지. 겨우 감이 잡히는 듯했다.

이날의 주인공은 산방 주인장인 이택우 선생(68, 전 삼원테크 대표이사 사장). 그의 사돈 권영택 대구한의대 겸임교수(62, 풍수지리 전공)가 행사명을 넌지시 귀띔한다. ‘안택제(安宅祭)’라 했다. ‘안택제’라면 음력 정초, 가신(家神)에게 복을 빌고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던 척사진경(斥邪進慶) 의식 아니던가. 그러나 요즘은 폭이 조금 넓어졌나 보다. 일찌감치 초청장을 보낸 김언배 울산대 교수(섬유디자인학과)는 알기 쉽게 ‘집들이’라고 정의했다. 겸사겸사 마련한 자리였던 것.

신축건물 내실에서 축복(祝福)의식을 마친 승려들의 탑돌이를 닮은 바깥돌이 의식이 이어졌다. 대형목탁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태평소와 소라나팔 소리가 이채로웠다. ‘소라나팔 소리를 다 듣다니!’ 식사 시간에 안택제를 주관한 금강스님(김해 ‘대법륜사 회주’)의 설명을 잠시 들을 기회가 있었다. “티베트에서는 그 두 악기가 기(氣)를 부르는 소리지요.”

악귀 쫓는 구실도 겸하는 것은 아닐까. 안택제가 시작될 무렵 건물 바깥 스텐그릇 속에서 쑥이 향을 뿜으며 타던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모기향 구실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했다. 쌀 위에 얹혀 있던 이 쑥 역시 삿된 것을 물리치는 척사(斥邪) 의미가 숨어있었다.

하얀 모시옷차림의 제관(祭官) 이택우 선생에게 몇 마디 말씀을 청했다. 이날 2부 사회를 잠깐 맡은 김용주 변호사(석남사 신도회장)는 ‘덕장(德藏)’이 불자 이택우 선생의 불교식 이름[法名]이라 했다. 덕장 선생이 말했다. “산방 전체는 1천100평, 지은 지 3년째 됩니다. (손으로 가리키며) 이 집(맨 아래채) 2층은 손님들이 오시면 담소라도 나눌 수 있도록 꾸민 사랑방입니다. 1층은 지인들이 오시면 회의도 할 수 있게 꾸민 회의장인데 방 2개에 찜질방도 있지요. 순수한 게스트하우스라 보시면 됩니다. 가운데 건물은 저희 내외의 안방이 있는 본채이고요. 그리고 오늘 안택제를 지낸 저 건물(맨 위채)은 제가 갖고 있는 그림 200여 점을 전시할 갤러리로 만들려고 했다가 제가 전국차인회 고문도 맡고 있어서 차인(茶人)을 위한 차방(茶房)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래선지 이날 차 대접에는 김미숙 지회장을 비롯한 ‘석정차회’ 회원들의 숨은 뒷바라지가 돋보였다. 또 조용수 반구새마을금고 이사장(전 중구청장)을 포함한 ‘육기회(六機會=울산공고 6회 기계과 동기모임) 회원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우의를 과시했다. 다음날 어느 단체대화방에는 이택우 선생을 15세기 이태리 르네상스의 주역 ‘메디치 가문’에 비유하거나 ‘조선의 메디치’가 되어 창원에서 했던 ‘메세나 활동’을 울산서도 꾸준히 이어달라는 청을 올리기도 했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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