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도시…헝가리 부다페스트
회색빛 도시…헝가리 부다페스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7.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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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 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 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학교 다닐 때 읽어본 적이 있는 김춘수 시인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다. 헝가리는 중부유럽에 위치한 내륙국가로 다뉴브 강이 수도 부다페스트를 서부 부다 지구와 동부 페스트 지구로 나누고 있다. 헝가리의 역사는 대부분 외세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1949년에는 공산주의 정권이 성립되었다. 이후 1956년의 헝가리 의거로 이데올로기가 무너진 동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보행자도로인 바찌 거리에는 동유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갖가지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이곳의 물가는 저렴한 편이라 그냥 지나갈 수 없다. 부다페스트는 ‘동유럽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예술적 향기도 가득한 도시이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요한 슈트라우스)’, ‘헝가리 광시곡(리스트)’, ‘헝가리 무곡(브람스)’ 등 유명한 곡들이 헝가리를 수놓는다.

어부의 요새는 뾰족한 고깔 모양으로 된 7개의 타워로 유명하다. 이 타워들은 수천 년 전에 나라를 세운 7개의 마자르 족을 상징한다고 한다. 흰색으로 화려하게 지어진 성벽과 더불어 마차시 교회까지 뻗은 계단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어부의 요새’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옛날에 어시장이 있었다는 설과 18세기에 적군을 방어하기 위해 어부들이 나섰다는 설이 전해진다.

마차시 사원은 13세기에 지은 고딕 양식의 건물로 역대 헝가리 왕들이 대관식을 올렸던 곳이다. 교회 첨탑은 증축한 왕의 이름을 딴 것으로 우여곡절이 많은 곳이다. 16세기에는 도시가 점령되어 이슬람교의 모스크로 변했다가 17세기에 다시 가톨릭교회의 모습을 되찾았고, 18세기엔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다. 사원 내부는 이슬람의 분위기를 풍기며 여러 가지 원색 타일을 사용한 지붕과 장식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궁의 언덕’이라 불리는 겔레르트 언덕은 서울의 남산처럼 부다페스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바위산이다. 겔레르트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이 언덕에서 순교한 이태리 선교사의 이름이다. 2차 대전 후에는 독립을 기념하는 자유의 여신상을 세우기도 했다. 주변이 많이 정비되어 레스토랑과 카페, 온천이 들어서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성 이슈트반 성당은 부다페스트 최대의 성당으로 헝가리 왕국의 초대 국왕이자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인인 성 이슈트반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50년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지어졌고, 성 이슈트반의 다른 유품들과 함께 오른쪽 손목이 미라로 전시되어 있다. 이로 인해 다뉴브강변의 모든 건축물은 도시 미관을 위해 이보다 높이 지을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회쇠크 광장 또는 ‘영웅 광장’이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광장은 헝가리 정착 1,000년을 기념한 기념비가 있는 시내의 중심지다. 꼭대기에는 천사 가브리엘이 서 있고 밑의 받침대에는 7명의 헝가리 부족장과 헝가리 왕들의 상이 쭉 늘어서 있다. 썩은 포도로 만든 헝가리의 그 유명한 귀부 와인 토카이를 사서 외국인들 틈새에 앉아 쉬었던 곳이다.

헝가리 하면 최고의 포인트는 다뉴브 강의 야경이다. 낮이나 밤이나 너무나 멋진 세체니 다리와 국회의사당, 부다페스트의 상징인 부다 왕궁 등 다양한 건축물과 진정한 부다페스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코스다. 정말 아름답고 황홀하다. 다녀온 사람들은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잊을 수 없을 정도다.

눈물 나게 아름다운 곳이지만, 우리에게는 눈물이 나게 만든 곳이다. 지난 5월 30일은 헝가리 유람선 사고 1주기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다뉴브 강에서 한국인 승객 33명이 탄 유람선이 크루즈 선박과 충돌한 후 전복되어 침몰한 사건이다. 이 사고로 한국인 관광객 2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되었다. 가족단위의 여행객이 많았던 가슴 아픈 사고였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김윤경 여행큐레이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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