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窓門)과 대문(大門)
창문(窓門)과 대문(大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7.05 19: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문과 대문은 같은 문이지만 크기도 용도도 다 다르다. 크기로 비유하면, 조류로 따져 뱁새와 학(鶴) 정도다. 용도로 비유하면, 창문은 분위기 있는 커튼을 치지만 대문은 튼튼한 빗장을 건다. 창문에는 파리, 나방 등 곤충이 못 들어오게 방충망을 치지만, 대문으로는 영신(迎神)도 하고 황소도 들어온다. 갓 시집온 새색시는 창문으로 스며드는 달빛 때문에 잠 못 이루어도 대문으로는 짚불을 딛고 들어온다. 창문은 벽에 내지만 대문은 담에 세운다.

창문으로 들어온 병이 깊어 대문으로 상여가 나가는 경우도 있다. 창문은 줄리엣이 사랑을 노래한 곳이지만, 대문은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등 입춘방(立春榜)을 붙이는 곳이다. 창문은 밤손님이 기웃거리는 곳이지만, 대문은 주인이 떳떳하게 걸어서 들어오는 곳이다. ‘가난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대문을 박차고 나간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창문은 가난이 들어오는 작은 문이지만, 대문은 사랑이 박차고 나가는 큰 문이다. 창문은 감성이고 대문은 이성이다. 넘어 들어가면 창문이고, 걸어 들어가면 대문이다,

시인 장만영은 ‘사랑’ 이란 시를 통해 가난한 연인의 정서를 창문에 빗대어 표현했다. “단 한 사람/ 찾아주는 이 없은들 어떠랴./ 낮에는 햇빛이/ 밤에는 달빛이/ 가난한 우리 들창을 비춰줄게다./ 순아 우리 단둘이 살자.” 작곡가 에두아르도 디 카푸아(Eduardo di Capua)는 창문을 세레나데의 장소로 묘사했다. “창문을 열어다오, 내 그리운 마리아”(Maria Mari). 창문은 귀신의 침입을 막으려고 마늘을 걸어두는 곳이기도 하다. 창문(窓門)의 정의는 ‘공기나 햇빛을 받을 수 있고,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벽이나 지붕에 낸 문’ 혹은 ‘건축물에서 벽면 또는 지붕에 설치하는 개구부 중 사람이 출입하지 않는 문’이다.

대문은 상여가 나가는 문이다.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일세.”라 하여 대문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상징한다.(상여소리). 주인이라도 객사하면 결코 나가지 못하는 상징적 문이 대문이다. 대문(大門)의 정의는 ‘집 바깥으로 통하게 하기 위해 만든 커다란 문’이다.

사람의 행동을 창문과 대문에 비유할 수 있다. 곧바르고 명백하게, 짧고 굵게 말하면 비상식적, 주관적 행동이면 창문이고 상식적, 객관적 행동이면 대문이다.

2020년 6월 25일, 중구와 남구를 잇는 인도교 개통식이 있었다.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에는 ‘옥동∼농소1 도로개설공사 (가칭)이예대교 하부 인도교 개통’이라고 적혀 있었다. 2017년부터 2019년 10월까지만 해도 언론에서는 ‘오산대교’라고 불렀던 터라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인도교를 걸어가는 이들과의 대화에서도 ‘가칭’이라는 문구가 자꾸 떠올라 관계자의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가칭)이예대교’ 카드를 슬쩍 꺼내들어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심사로 짐작되었다.

하지만 누가 무슨 말로 부추기더라도 이름 지을 때만큼은 신중해야 한다. 이러한 사례를 창문과 대문의 관점에서 접근해 본다.

‘(가칭) 이예대교’에서 이예(李藝,1373~1445)는 조선조 세종 시대에 통신사로 활약한 전문 외교관으로 본관은 학성(鶴城), 호는 학파(鶴坡)라고 쓴다. 충숙공(忠肅公)은 시호(諡號)이다.

이예 선생은 어떤 인물인가? 한마디로, 우리나라 외교사에서 결코 작거나 가벼운 인물이 아니라 크고 중후한 대문 같은 분이시자 학성이씨(鶴城李氏)의 시조(始祖)이시다. 그러기에 존함은 당연히 ‘대문’과 ‘학(鶴)’에 비유되어야할 분이시다. 예를 들면 사명대사,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의 존함을 붙인 다리는 없다. 그런 다리가 있어야만 거룩한 이름이 민족의 가슴속깊이 새겨지는 것은 아니다.

선생의 존함을 도로명 혹은 대교이름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섣불리 착각해서는 안 된다.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의미를 음미해 보자. ‘학이 깊숙한 물가에서 울어도 그 소리가 하늘까지 들린다.(鶴鳴九皐 聲聞于天)’고 했고, ‘봄에 꿩이 스스로 자주 울음을 우니 구설수가 많다(春雉自鳴口舌紛紛)’고 했다.

도로이름은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을 짐작할 수 있어야 하고, 시의성과 시대성도 요구된다. 이예 선생의 시호와 존함에 먹칠이 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러한 이유로 도로명과 다리이름은 지역의 지명을 활용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오산지역의 다른 이름은 ‘학천(鶴天)’이다. 학천은 ‘동천(洞天)’과 함께 경이로운 자연경관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문자다. 또 ‘멍정’, ‘말정’으로도 불리는 지천(支川)의 이름 ‘명정(明淨)’도 있다. 도로와 다리 이름의 대안(代案)으로 제안해본다. (가칭)이예대교 하부에 설치된 인도교가 처음부터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괜한 일인지는 몰라도 필자는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구호자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박사·철새홍보관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