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지부(終止符)’
‘종지부(終止符)’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7.0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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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에서도 즐겨서 쓴다. 중견, 새내기 구분이 없다. 어찌 보면 중견이 그리 써버릇하니 새내기도 그리 따라할 수밖에 없다. 이미 습관으로 굳었다. 무작정, 무비판적, 습관적이란 표현이 어울릴 법하다. 그래서 뒤져보았다. ‘고려대 우리말샘’ 뜻풀이에 시선이 멈췄다. ‘종지부’란 말의 쓰임새가 궁금했다.

<[언어] 문장의 끝맺음을 나타내는 부호를 통틀어 이르는 말. 온점, 고리점, 물음표, 느낌표 등이 있으며, 흔히 온점만을 가리킨다.> 이해를 도울 겸 같은 뜻의 영어를 눈길이 갔다. ‘피리어드(period)’가 나왔다. ‘full stop’도 같은 뜻이라 했다.

쓰임새의 본보기도 나왔다. <너는 글을 쓸 때 종지부를 빼먹는 버릇이 있구나./ 이 문장은 너무 길어서 열세 줄 만에야 종지부가 나온다.> 맨 끝에는 뜻이 비슷한 말 유의어(類義語)도 달아 놓았다. ‘마침표’가 그것이라 했다.

사실 ‘종지부(終止符)’는 일본서 건너온 말이다. 이런 현상을 가슴 아파한 선각자가 있었다. 울산사람들이 ‘울산이 낳은 인물’이라고 자랑하는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1894~1970)이다. 선생은 생전에 왜색으로 도배된 우리말을 알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려고 무던히도 애 쓴 분이다. 오죽했으면 “한글이 목숨”이라는 글씨를 다 남겼겠는가.

그의 숨결은 군부대 철조망 안까지 뻗쳤다. 개머리판, 노리쇠뭉치, 열중쉬어!…. ‘무진장’이란 표현이 걸맞을 법했다. 한동안 자연과학계에서 쓰였던 피돌기(=혈액순환), 맘대로근(=의지대로 움직이는 근육·隨意筋), 제대로근(=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근육·不隨意筋)도 선생이 흘린 땀방울의 흔적이었다.

이 같은 일념으로 선생은 다른 낱말도 새로 그리고 무수히 만들어냈다. 지금은 죽은말[死語] 이나 다름없지만 선생이 지은 ‘우리말본’에서는 주인 대접을 받았던 새말들이 참으로 많았다. 이름씨(=명사), 움직씨(=동사), 어찌씨(=부사), 꾸밈씨(=수식어), 걸림씨(=관계사), 어떻씨·그림씨(=형용사) 따위도 예외가 아니었다.

‘종지부’의 자리를 대신 차지할 ‘마침표’도 그런 류의 신조어(新造語) 가운데 하나였다. ‘쉼표’를 뜻하는 ‘휴부(休符)’·‘휴식부(休息符)’도 마찬가지.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과 마주치게 된다. ‘쉼표’는 지금도 당당히 살아남았지만 마침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소위 식자층(識者層)에서 자주 쓰면 오래갈 낱말도 집단외면을 당하고 나면 언젠가는 그 흔적을 죽은말의 공동묘지에서나 찾아보게 되는 법이다.

이것은 안타까워도 진실이다. 한글학자들이 세력다툼에서 맥없이 밀려난 뒤부터 서서히 나타난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런 회오리에 언론인이나 공직자가 도매금으로 휩쓸린다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침이 마르도록 ‘외솔’을 외치면서도 그분의 본뜻은 왜 헤아리지 못하는지, 화부터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울산시교육청의 2일자, 4일자 보도자료도 그랬다.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란 낯선 낱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조금의 미안함도 없이, 현수막에다 쏟아낸 것. ‘학교혁신 퍼실리테이터 양성 기본과정 연수’란 이름의 이 행사는 한번(2일)은 학부모, 또 한 번(4~5일)은 교원을 대상으로 삼았다.

인터넷사전을 뒤져보니 ‘촉진자’, ‘조력자’란 뜻이다. 아무리 전문용어라지만 알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 쓰려는 고민을 눈곱만큼이라도 했어야지…. ‘외솔’을 자부심으로 여기는 울산의 교육기관에 국어전문가가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문제의식이 없어서 그런가. 이젠 그런 무관심에 ‘종지부’가 아닌 ‘마침표’를 찍을 때도 됐다고 생각한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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