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에서 엿본 인간의 존엄성
능소화에서 엿본 인간의 존엄성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6.30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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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창의성이 더욱 요구되는 시대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는 애당초 아무것도 모른다. 자라면서 이것저것 보고 경험하면서 느끼는 흥미와 호기심이 그 아이를 조금씩 성장시켜간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독창성을 가지고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 하지만 지식이 쌓이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점점 흥미를 잃게 되고 호기심도 사라진다.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독창성과 창조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도 늘 부족하다고 여기며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지적 겸손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국민에게 가장 널리 존경받는 영웅이 누군가. 두말할 것 없이 광화문 광장에 우뚝 서 있는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이다. 특히 조선의 절대 군주였던 세종은 신하를 대하는 자세부터 남달랐다. 늘 “어찌하면 좋겠느냐”, “경의 말이 참 아름답다”, “나는 잘 모른다”고 입에 달고 다니면서 진정한 섬김과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신하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경청하고, 논의 중에 나온 주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자신을 한없이 낮춘 세종이다. 요즘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잘못한 일이 들통나도 무조건 버티며 ‘내로남불’을 외치지 않던가. 이래선 행복한 사회공동체가 될 수 없다. 그럴수록 공평한 잣대가 필요하다. 오늘따라 세종의 리더십이 더욱 그립다.

작금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온통 서로에게 뒷말과 쓴소리만 뱉어내느라 혈안이다. 누군가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뭔가 크게 잘못 흘러가고 있다. 그러니 덩달아 누가 봐주지 않거나 인정해주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섭섭해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 일이 계속 쌓이다 보면 끝내는 우울해지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병을 얻기도 한다. 최근 부쩍 늘어난 ‘묻지마 폭행’이 단적인 사례다. 단 한 번뿐인 인생, 누구를 위해서 사는 인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인생이다. 그러니 일이 잘못되거나 순조롭지 않을 때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다. 누구를 탓하거나 섭섭하게 여길 일도 아니다. 먼저 “내 탓이오”를 외치자.

요즘 산책을 나가면 아파트 화단에선 왕원추리꽃과 수국이 풍성한 자태를 뽐내고, 공원 가장자리엔 황적색 꽃이 만발한 모감주나무가 ‘떡’ 하니 둘러싸고 있다. 보리수라고도 불리며 염주를 만드는 데 쓰인다. 여름꽃 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단연 능소화(凌?花)다. 능소화는 능가할 능(凌)에 하늘 소(?)를 써 ‘하늘을 능가하는 꽃’이란 의미다. 덩굴이 나무나 담장을 높이 감고 올라가 하늘을 온통 덮은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담쟁이처럼 도심 담벼락을 타고 오르며 피는 곳마다 그리움의 꽃 세상을 만든다. 낚싯줄같이 늘어진 줄기에 매달린 꽃대가 참 특색 있다. 갈고리처럼 굽어진 꽃대 하나하나가 모두 등잔대에 올라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모양새다.

이처럼 아름다운 능소화지만 전설은 무척 슬프다. 임금을 짝사랑하다 상사병으로 죽은 궁녀 소화(少花)의 슬픈 사연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장마철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주홍빛 서러움으로 피어나 내 심금을 울린다. ‘명예’인 꽃말에서 느껴지듯 장마 속 빗줄기에도 잘 떨어지지 않는 꽃대는 벚꽃이나 매화처럼 가벼이 꽃잎을 흩날리지 않는다. 오히려 동백꽃처럼 시들기 전에 송이째 ‘툭’ 하고 떨어져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더군다나 손을 대면 꽃송이가 쉬이 떨어질 정도로 도도하다. 능소화는 영화에서도 본 적 있는 어사화로 쓰여 장원급제한 선비의 상징이었다.

꽃은 절대로 누굴 탓하는 일이 없다. 매년 자기 능력대로 꽃을 피우고 제 모습 그대로 간직하다가 때가 되면 조용히 물러갈 따름이다. 우리도 이런 꽃을 보면서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 보아주지도 않는 왕을 짝사랑만 하다 죽은 한(恨) 많고 가련한 여인상에서 무엇을 보았나. 비록 설화지만, 차라리 죽음을 각오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낸 한 인격이 존경스럽다. 지금은 자신과 타인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공감적 인품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자신의 존엄성을 깨달은 사람만이 타인을 존중하며, 혹시 기대하지 못한 대접을 받더라도 상처받지 않고 감정이 상하지 않기에.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RUPI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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