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발원문(發願文)
어떤 발원문(發願文)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6.2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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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따라 하늘은 아침부터 온통 잿빛이었다. 오후 3시, 본 행사가 시작될 무렵 빗방울은 채찍처럼 내리꽂히고 있었다. 하늘은 누구를 그렇게 질책하려 했을까. 사찰 경내를 층층이 메운 스님과 불자, 유족들은 이 빗방울의 의미를 저마다의 촉각으로 헤아리는 것 같았다.

6·25전쟁 70주년인 6월 25일 오후, ‘2020년 국태민안 수륙대재’가 봉행된 대한불교조계종 15교구(통도사) 소속 울산 백양사. 필자는 이 뜻깊은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는 못했다. 수륙대재 관람도, 추도사·법문 입수도 엄두 밖이었다. 오후 4시로 예정된 다른 약속 자리 때문이었다. 그 대신 백양사 주지스님의 봉행사와 울산불교신도회 관계자의 발원문, 이 두 가지는 어렵사리 챙길 수 있었다.

사족삼아 덧붙이면, 국가무형문화재 제125호인 ‘수륙대재(水陸大齋)’는 바다(水)와 육지(陸)에서 외롭게 숨져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고혼(孤魂)들의 넋을 위로하는 불교전통의례다. 또 ‘발원문(發願文)’이란 불교 수행자가 정진할 때 세운 서원이나 시주의 소원을 적은 글을 말한다.

(사)태화문화진흥원 이사장인 산옹 주지스님의 봉행사는 이날 행사의 참뜻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었다. “대운산 일대에서는 870명의 유해가 발굴됐고 이분들의 주검은 백양사 앞 함월루 주변 가묘(假墓)에 모셨다가 어느 날 어디로인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오늘은 이분들의 70년 한(恨)을 풀어드리는 날인만큼 그 유족들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으면 합니다.”

‘870명의 유해’, ‘그 유족들’이란? 귀에 선 이 궁금증의 뿌리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를 수도 없이 낳았던 우리 민족사의 비극 ‘보도연맹 사건’이었다. 그리고 백양사 앞 빈터는 1960년, 울산보도연맹 사건 희생자들의 합동묘지와 추모비가 세워졌던 곳이다. 그러나 그 해 곧바로 5·16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이곳은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만다. 혹자는 이곳에 묻혀 있던 주검들이 야밤에 군사작전 하듯 파헤쳐진 후 삼산동 일대에서 일주일 동안 불태워졌다고 증언한다.

그런 예비지식을 갖고 김용주 울산불교신도회 부회장(울산변호사회 회장, 석남사 신도회장)이 밤새워 작성한 발원문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오늘 저희들은…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유명을 달리한 일체 유주무주(有主無主) 고혼들을 천도하기 위하여 여기 모였습니다.…이유도 모르고 죽어간 수많은 원혼들의 피맺힌 사연들을 저희들이 어찌 다 알겠는지요. 하지만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는…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해서 저희들은 오늘 수륙대재의 법석을 베풀어 그들의 아픔을, 그들의 원한을, 그들의 가슴시린 사연들을 모두 풀어내었습니다.”

잔잔한 감동은 계속 이어졌다. “오늘 내리는 비는 그들의 가슴시린 아픔의 눈물이자, 부처님 뵈온 기쁨의 눈물이옵니다.…오늘 수륙대재에 마음 모은 저희들의 공덕을 굽어 살피시어 시기와 질투를 뛰어넘어 사랑이 가득한 세상, 대립과 경쟁을 뛰어넘어 화합으로 함께하는 세상, 투쟁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가 되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피를 청하옵니다.…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천도재(薦度齋) 내내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뒤늦게 참례한 송철호 울산시장은 이 비를 ‘오랜 시간 울산을 외롭게 떠돌던 영혼들이 위로를 받고 흘리는 고마움의 눈물’로 묘사했다. ‘이름 있는 희생자 415명, 이름 없는 희생자 455명’의 원혼들이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현문스님의 법문처럼, 모두 극락왕생(極樂往生)하셨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김정주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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