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 학(鶴)을 춤추게 하자
칭찬, 학(鶴)을 춤추게 하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6.2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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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ion-수다, go, 바람처럼, But, 침묵, to dance, 나무에 앉다, to mountain 등 인상(impression, 印象) 시리즈를 고집하는 화가가 있다. 지인 조철수다. 작가는 impression을 전제로 하지만 산, 빠빠라기의 일상, 나의 이야기, 기억, Humam dinosaur 등의 작품을 통해 비전(vision) 넓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서양화 전공 비구상을 즐겨 그린다.

작가는 2020년 6월 8일부터 20일까지 울산 ‘한빛갤러리’에서 주제 ‘아름다운 침묵’으로 제17회 개인전을 열 정도로 부지런한 화가다. 작가가 주제 ‘아름다운 침묵’에 대해 설명한다. “이 작품 속에 어머님을 그렸습니다. 어릴 적 어머님의 모습을 상상하며 아침저녁 하루에 두 번씩 마루를 물걸레로 깨끗하게 청소하시던 모습을 그렸습니다. 우리가 볼 때 그저 평범한 마루지만 마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어머님의 손길이 하나하나 다 들어가 있습니다. 작품 속에도 마룻바닥에 그려진 어머님의 흔적이 하나하나 담겨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 첫 인상(印象)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는, 전문성이란 전혀 없는 그야말로 잡부로 보였다. 모래와 벽돌을 질통에 지고 3층, 4층을 하루 종일 수없이 오르내렸을 것 같은 영락없는 일일잡부였다. 다른 하나는 굶주림에 지쳐 멧돼지를 쫓는 담비의 섬뜩한 눈빛은 보이지만, 아직 칼자루는 못 쥐고 겨우 칼끝만 쥐고 있을 뿐인 깍두기 행동대원으로 보였다.

그 후, 몇 번을 삼겹살 연기 속에서 오랜 시간을 마주보았다. 늘어난 빈 소주병이 졸음에 겨워 누워서 뒹굴 때쯤 그의 첫인상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화로 속에 던져진 눈덩이처럼 쉽게 녹아버렸다. 그의 속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강심수(江心水)를 길러 돌솥에 정성껏 달인 선다(禪茶) 같은 예의, 인정스러운 따뜻한 가슴, 사연을 담고 있는 촉촉한 눈빛….

작가의 작품 impression 시리즈는 마치 <화엄경(華嚴經)>의 신(信)·주(住)·행(行)·회향(廻向)·지(地) 등 수행의 과정을 닮았다. 선재동자가 오십 두 명의 선지식을 차례로 찾아가 구법(求法)하는 과정, 출가자가 쉼 없는 수행으로 오십 두 번째 묘각(妙覺)하는 과정에 비유해도 지나침이 없다. 작품의 바탕에는 항상 ‘impression’이 기둥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면서 화면을 가득히 채우고, 비우고 그 위에 또 다른 형태의 구성으로 반복해서 그리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화엄경(華嚴經)의 수행 단계를 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수행 과정에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미움이 들어있다. ‘늙은 여자의 수다’는 vision이자 아름다운 침묵이다. 작가는 유년이 그리워 잊지 못한다. 특히 어머니는 미움과 사랑으로 대칭된 데칼코마니 기법의 애증(愛憎)이다. 늙은 여자의 수다 시리즈 작품에는 눈물, 그리움, 성실함, 어머니 등이 다양한 바탕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비구상을 하면서도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을 깔고 있다. 작가가 전통적 마루의 짜임을 재구성한 것은 어머니에 대한 애증의 표현이다. 수다는 잔소리부터 격려의 말까지를 통틀어 담고 있는 어머니 속가슴의 편린(片鱗)이다. 작가는 이제 와서 어머니의 수다를 곰곰이 되새기면서 ‘늙은 여자의 수다’가 ‘아름다운 침묵’으로 변함을 느낀 것 같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여인들의 의미 있는 수다가 보약(補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미 세상에 없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의도된 수다가 그립다. 그리움이 지나치면 아름다운 침묵이 된다. 생전 어머니의 수다가 떠오르면 오래된 마루에 앉아보면 알게 된다. 마루판이 가로와 세로로 짜인 의미를….

그곳은 어머니의 평생 공간이다. 설움, 희망, 탄식, 설렘이 어리연 노란꽃잎으로 피어난다. 어떤 가수는 홍시를 보면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했다. 또 어떤 가수는 살아있는 늙은 어머니께 무병장수를 빌었다. “울 엄마 날 낳아/걱정 태산이 되고/주름 깊은데/세상사 나 잘났다/허풍소리에/눈가에 이슬 맺히시네/어리버리 가진 것 없어/떠버리 말로만 한숨 드렸네/어리버리 수많은 날을/응어리 가슴에 한만 드렸네/무병장수 부디 하옵소서” 작가는 ‘늙은 여자의 수다’와 ‘아름다운 침묵’이 엄마의 자식사랑이었음을 육십 나이에 들어서야 비로소 알았다고 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서울시 의장상 및 특선을 차지했고, 울산미술대전에서는 전체대상 외 우수상을 차지한 경력도 있다. 현재 한국미협과 울산미협 회원이며, 울산대 일반대학원 섬유디자인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미술과 비평> 주최 ‘A&C Festival 2020’에서 ‘아름다운 침묵’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칭찬은 학(鶴)을 춤추게 한다.’ 필자는 이런 작가와 같은 하늘아래에 생활하면서 이따금 마주보며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에 행복감을 갖는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박사·철새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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