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기, 우리가 함께 성장하는 시간
책 쓰기, 우리가 함께 성장하는 시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6.22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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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한동안 멈추었던 학교는 본격적인 등교개학으로 아이들의 에너지로 가득 찼다. 한동안 아이들과의 눈 맞춤이 그리웠던 나에게 아이들과 나누는 소소한 소통의 즐거움은 생활 속 더 큰 활력소가 된다. 그래도 생활 속 거리 두기로 학교생활에도 크고 작은 제약들이 생겨나면서, 매년 운영해 오던 책 쓰기 동아리를 올해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고민이 들기도 했다.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까지 수없이 만나고, 의논하고, 머리를 맞대야 하는 과정들이 있는데, 과연 코로나 상황에서 그러한 활동들이 가능할지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수업 중 던진 책 쓰기 동아리 활동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으니, 그래도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조금씩 기울어져 간다. 그래서 중간고사가 끝난 이번 주 본격적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어떤 책으로 담아낼까 함께 이야기해 볼 계획이다.

책 쓰기 동아리와 나의 인연은 지난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울산교육청의 인문 책 쓰기 동아리 공모사업을 시작으로, 그러니까 매년 어김없이 한 권 이상의 책들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왔다. 국어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가 담긴 글들을 만나게 된다. 글 속에는 평소 알던 모습과 다른 아이의 삶과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하고, 아이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우리 사회 모습이 담겨 있기도 했다. 한 편의 글을 쓰기까지 아이들이 고민했던 시간과 노력이 그저 한낱 글 조각들로만 남겨두기에 아쉬운 글들도 많았다. 그런 조각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책 쓰기 동아리를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시작은 했지만, 덜컥 지원금을 받고 난감함이 밀려왔다. 그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혀 보고 학교 문집 정도 제작해 보았을 뿐이지, 정작 단행본으로 책을 제작, 출판해 본 경험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콘셉트의 책을 만들지, 책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구현할지 의견을 모으고 결정하는 일은 교사의 역할보다는 출판사 편집장 역할에 가까웠다. 정해진 시간 안에 책을 출판해야 한다는 것이 또 다른 압박감으로 찾아오기도 했고, 창작의 고통을 알기에 원고 마감 시간을 지키지 않는 아이들에게 재촉, 재촉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오롯이 책 편집 작업은 나의 몫이 되어 매년 9월 밤늦도록 책 편집에 매진하는 나 자신을 볼 때면 내년에는 절대로 하지 않아야지 하고 다짐하던 것이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힘든 과정이지만, 그래도 코로나 상황인 올해에도 책 쓰기 동아리를 운영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책 쓰기’의 과정이 주는 성장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책 쓰기 동아리는 그 어떤 동아리보다 긴 호흡의 프로젝트 활동이다. 지도교사의 노력과 힘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로써 완성되는 프로젝트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게 된다. 책을 쓴다는 것은 개인 일기와는 다른 차원의 표현활동을 경험하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진솔함과 독자의 반응 사이에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하는 순간도 있고, 자기 글의 수준을 넘어 책 전체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메시지에 집중해 보는 경험도 하게 된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책이라는 것이 온전히 작가의 결과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함께 의미를 공유하는 과정임을 깨달아 가게 된다. 어렴풋하게나마 책을 통해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정작 아이들은 자신들이 책 쓰기 과정을 통해 이러한 역량을 갖추어 나갔다는 것을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들도 책 쓰기를 통해 자신이 한 단계 성장했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이다. 중학교 시절 책 쓰기 동아리를 함께했던 녀석들이 고등학교에 가서도 책 쓰기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 저마다 나름의 가치를 깨닫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작년까지 매년 학생저자 책 축제에 참여하며 졸업한 아이들이 출판한 책들을 찾아보고, 녀석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쏠쏠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올해 새로운 아이들과 함께 책 쓰기 동아리를 시작하며, 험난한 과정이 눈에 선하지만 그래도 기대와 설렘이 더 앞서는 것은 아이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성장하는 모습이 우리가 만들 책 속에 고스란히 담길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상황이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우리들의 여정을 위한 그 첫걸음을 내디뎌 본다.

강미연 약사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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