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공공언어’
‘쉬운 공공언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6.21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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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지구촌을 쓰나미처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이 시대 인류에게 원치 않는 변화를 강요하며 몽니를 부린다. 그렇다고 어두운 면만 있는 건 아니다. 때론 산타크로스처럼 뜻밖의 선물을 선사하기도 한다. 외신은 스모그 현상이 사라진 베이징의 맑은 하늘을 사진으로 전송했고, 울산의 한 지인은 대마도가 다 보인다며 용케 그 윤곽 사진을 찍어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네 동요 ‘기찻길 옆 오막살이’를 연상시키는 뉴스가 외신을 탄 일도 있다. <필리핀 ‘코로나 베이비’ 21만여명 출생 전망>이란 제목의 6월 21일자 하노이 발 연합뉴스다. “필리핀에서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봉쇄기간에 의도하지 않은 임신으로 21만여명이 태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후안 안토니오 페레스 필리핀 인구위원회 상임이사는 필리핀대 인구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여성 300만명가량이 어떠한 가족계획 방법도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봉쇄기간에 의도하지 않은 임신은 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는 낯선 외래어와 함께 ‘쉬운 우리말 대체어’를 간간이 소개하기도 했다. ‘쉬운 우리말’이라면 오랜 세월에 걸쳐 단연코 KBS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요새는 한풀 꺾인 느낌이다. 대신 그 틈새를 연합뉴스가 신경은 앵커를 앞세운 채 비집고 들어가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이 매체가 ‘맛있는 우리말’이란 프로그램을 선보인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극히 최근의 일. 코로나19의 사생아들을 구경하는 재미란 알사탕 깨물 듯 제법 쏠쏠한 편이다.

신경은 앵커가 한번은 이런 말을 했다. “정부와 언론이 쓰는 외국어 표현. 국민 10명 중 4명은 잘 모른다고 하는데요.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외래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KTV(국민방송) 대한뉴스에서는 매주 금요일, 쉬운 우리말 대체어를 알려드릴 예정인데요. 오늘 알려드릴 쉬운 우리말, 바로 ‘팬데믹’입니다.”

최근에 눈여겨본 외래어는 대부분이 코로나19 사태와 유관한 것들. 팬데믹(pandemic), 엔데믹(endemic), 언택트 서비스(untact service), 풀링 검사(pooling 검사)에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드라이브 스루(dri ve-thro ugh/drive-thru)만 해도 처음에는 낯설기 짝이 없었다. 의료계에서 주로 쓰는 전문용어들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아무리 그래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것도 까막눈이조차도, ‘알아야 면장이라도 하고’, 알아야 생활방역인가 뭔가에 끼어들 의욕이라도 생길 것 아닌가.

그래도 낯선 기간을 바짝 단축시키는 데는 국립국어원의 구실 못지않게 신문과 방송, 언론매체들의 힘이 컸지 싶다. 신경은 앵커의 ‘알기 쉬운 우리말’ 풀이를 좀 더 들어보자. 화살표(→) 다음은 다듬은 표현 즉 대체어(代替語)다. 팬데믹→ ‘세계적 유행’, 엔데믹→감염병의 주기적 유행, 언택트 서비스→비대면(非對面) 서비스, 풀링 검사→취합 선별 검사…. 그래도 어쩐지 뒷맛은 찝찝하다. 이른바 황우도강탕(黃牛渡江蕩=‘황소가 건너간 국’이라는 뜻으로, 고기가 없는 고깃국을 이르는 말)이라도 대하듯 순우리말을 여간해서 찾아보기 힘든 탓이다. 그러다 보니 ‘쉬운 공공언어’는 ‘그림의 떡’이란 느낌도 든다.

그러면 ‘공공언어(公共言語)’란? 이런 뜻풀이가 있다.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공공성을 띤 언어를 통틀어 이르는 말. 각종 공문서, 대중매체에서 사용하는 언어, 거리의 현수막이나 간판에 사용하는 언어, 계약서·약관·사용설명서, 교양서적에 사용하는 언어, 대중 상대 강의 때 사용하는 언어가 이에 해당한다.’ 문득 국문학 하는 분들의 행방이라도 찾고 싶어진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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