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가야할 그 길
모두가 가야할 그 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6.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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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문화학(生死文化學)’을 전공했다. 평소에 관심이 있던 분야였다. 「現行 佛敎 49日 齋儀式의 時宜性(동국대, 2009)」 이 석사학위 논문이다. 생사문화학과라지만 장례(葬禮)문화가 중심이었다. 죽음은 태어난 모든 생물이 대상이며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온다. 죽음을 대하고 망자를 떠나보낸 이후의 슬픈 감정은 온전히 산 사람의 몫이며 한동안 견디기 어렵다. 그 우울증으로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차례 휴대폰 문자로 전해지는 부고장을 읽는 편리함도 있지만 죽음의 소식을 접한 감정은 모두를 힘들게 한다. 죽음은 자연의 섭리인 줄을 알지만 그래도 부음만큼은 듣기를 원하지 않으며, 부고장 역시 받기를 꺼려하는 것은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옛날에는 부고를 받으면 곧바로 냄새나고 꺼리는 정낭 모퉁이에 끼워둔다. 내용은 부고 전달자한테서 듣기 마련이어서 구태여 내용물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 그 때문에 과거 우리 집 정낭에는 노란봉투의 부고장이 한곳에 겹쳐 있곤 했다. 부고장을 정낭에 보관하는 행위는 사람의 죽음인 ‘시(屍)’와 똥 ‘시(屎)’가 같은 소리여서 인분 냄새가 혹여 죽음의 저승사자를 물리칠 거라는 상징적 주술(呪術)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대하는 사람마다 감정은 제각각이다. 죽음을 인정하며 영혼을 봉송하는 시대적 표현들을 찾아본다.

함허당득통화상(涵虛堂得通和尙, 1376∼1433)은 생사를 구름에 비유했다. “태어남이란 한 점 구름이 생겨나는 것이며, 죽음이란 한 점 구름이 흩어지는 것이다. 구름이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고 죽음도 이와 같다.(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는 곽씨 부인을 뒷산에 묻고 내려오다가 뒤돌아보며 하직인사를 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살이가 마치 흘러가는 구름 같습니다. 평토제를 지내고나니 조객들은 모두 흩어져 떠나가고 산은 고요한데 황혼에 달이 뜹니다. 옥경요대로 학이 되어 나래치고 날아가소(空手來空手去 人生事如浮雲 平土祭人散後 山寂寂月黃昏 玉京瑤臺 化鶴翩翩).”

소월은 <초혼(招魂)>에서 ‘삼복(三復)’ 대신 이렇게 외쳤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미당은 <귀촉도>를 통해 망자를 보내는 미망인의 슬픔을 이렇게 읊었다.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생략)/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은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가수 김정호는 <님>을 통해 먼 길을 혼자 떠나는 님을 향해 애절하게 노래를 불렀다. “간다 간다 정든 님이 떠나간다/ 간다간다 나를 두고 정든 님 떠나간다/ 님의 손목 꼭 붙들고 애원을 해도/ 님의 가슴 부여잡고 울어 울어도 뿌리치고 떠나가더라….”

가수 임희숙은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에서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 바람이 슬프고/ 내가 돌아선 하늘엔 살빛 낮달이 슬퍼라/ 오래도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가거라 사람아 세월을 따라/ 모두가 걸어가는 쓸쓸한 그 길로….”라고 노래했다.

가수 이선희는 <인연>에서 “…취한 듯 만남은 짧았지만 빗장 열어 자리했죠/ 맺지 못한대도 후회하진 않죠 영원한 건 없으니까/ 운명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내 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다시 올 수 있을까요/ 하고픈 말 많지만 당신은 아실 테죠/ 먼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다신 놓지 말아요/ 이생에 못다 한 사랑 이생에 못한 인연 먼 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라고 했다.

가수 장윤정은 <초혼>에서 “살아서는 갖지 못하는 그런 이름 하나 때문에/ 그리운 맘 눈물 속에/ 난 띄워 보낼 뿐이죠…. 따라가면 만날 수 있나/ 멀고 먼 세상 끝까지/ 그대라면 어디라도/ 난 그저 행복할 테니….”라고 노래했다.

다비장에서 입적한 은사 스님을 화장(火葬)할 때 상좌들은 거화(擧火)하여 연화대에 착화(着火)하기 직전 일제히 “스님! 집에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라고 외친다. 이는 뜨거운 화택(火宅)에서 얼른 나오시라는 말이다.

조문을 가면 조화(弔花)가 도열해 터널을 이루고, 흰 국화송이의 만경창파에서 이승의 지인을 맞이하는 영정을 본다. 그럴 때면 나의 부음을 접한 지인들이 어떤 감정을 느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무덤덤, 애도, 분노…. 결코 분노하는 삶은 살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출근길에 영구차를 보았다. 모두가 가야할 그 길을 먼저 가고 있었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명예회장·조류생태학박사·철새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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