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주는 선물
자연이 주는 선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6.1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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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동구청에서 네 평 남짓한 도시농장을 분양받았다.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채소를 직접 심고 가꾸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내심 흙을 만지면서 놀 수 있다는 기대가 더 컸다.

굳어있는 땅을 괭이로 파서 잘게 부순 다음 상추모종을 옮겨 심었다. 쌀을 씻을 때마다 모아둔 쌀뜨물을 영양제로 주면서 정성을 쏟았더니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잘 자라는 게 여간 기쁘지 않았다.

그다음엔 깻잎모종을 심었다. 향긋하고 영양 풍부한 깻잎을 따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열심히 잡초를 뽑아주고 물을 주고 보살폈더니 하루가 다르게 잘 자랐다. 특히 깻잎전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내가 키운 깻잎으로 전을 해주었더니 너무나 좋아했다.

상추와 깻잎을 성공적으로 키우고 보니 자신감이 조금 생겨서 방울토마토, 오이, 고추, 파프리카, 참외, 가지, 양배추의 모종도 구입해서 심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채소들을 보면서 가슴 그득해짐을 느꼈다. 그 중에서도 양배추는 도시농장 전체를 다 둘러봐도 우리 것만큼 튼실하고 큰 것은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어느 날 가보니 초록색 벌레가 양배추를 다 갉아먹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아뿔사! 특히 양배추에는 벌레가 아주 잘 생긴다는 것이었다. 지인에게 문의했더니, 소주와 식초를 1:1로 섞어서 뿌려주면 벌레들이 죽을 거라고 했다. 친환경농약을 열심히 뿌렸더니 벌레들은 조금씩 없어지는 듯했다.

며칠 전에는 못 보던 풀이 자라고 있어서 뽑으려다가 자세히 보니 바람이 옮겨준 선물이 있었다. 그건 비름나물이었다. 음식은 역시 추억으로 먹는 것인가 보다. 유년시절에 자주 먹어본 나물이기에 반갑기도 했다. 비름나물은 특히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칼슘도 풍부하며, 혈관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지난 주말엔 시댁에 가면서 상추와 깻잎을 한 아름 따서 가져갔다. 싱싱한 회와 삼겹살을 상추와 깻잎에 싸서 드시던 시어머님이 “바쁜 우리 며느리가 농사도 다 짓고 기특하네. 상추가 참 부드럽고 맛있네.”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님이 좋아하시니 기쁨이 두 배로 다가왔다.

도시농장에서 채소를 가꾸기 전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산에 가고 싶었는데, 요즘은 ‘얼마나 컸을까?’ 하고 궁금하고 보고 싶은 마음에 산보다 채소들을 만나러 더 자주가게 된다.

지난번엔 정자에서 가까운 바닷가에서 산책을 하다가 모래밭에서 자라고 있던 호박 두 포기를 우연히 발견했다. 모래밭에 싹을 틔웠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순간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을 탓하지 않고 불가능할 것 같았던 싹 틔우는 일을 기적적으로 해낸 호박을 보며 나의 생활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자연이 주는 선물을 늘 무료로 받으면서 때로는 그 고마움을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가 내려주어 대지의 생명들이 싹을 틔우고 햇볕을 쬐어주니 꽃을 피우고 열매도 맺을 수 있지 않은가. 씨앗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실어다주는 것 또한 바람의 역할인 것을.

늘 받았기에 미처 고마움을 못 느끼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일들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오늘도 우리는 자연이 주는 위대한 선물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천애란 사단법인 색동회 울산지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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