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信)…오빠도 못 믿나?
믿음(信)…오빠도 못 믿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6.07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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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서로에게 믿음은 중요하다. 친척누나가 ‘오빠 못 믿나? 손만 잡고 잘게….’ 하는 총각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결국 결혼해서 잘살고 있다. “자형! 누나가 그렇게 좋던교?”, “안 좋으면 그래했겠나…”, “그래도 그렇지”, “처남도 그 처지라면 그랬을 걸.….” 대답 대신 미소만 지었다. 자형은 결혼해서 첫딸을 낳았다. 누나는 딸을 어르면서 ‘오빠 못 믿는다!’ 했다. 친척이 모이면 우스갯소리로 ‘오빠 못 믿나?’로 한바탕 웃는다. 이제 저승꽃이 피는 나이로 살고 있다.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가끔 듣는 말 중에 ‘신부’라는 말이 있었다. 한자인지, 일본어인지, 그 의미도 잘 몰랐지만 자주 들었다. 취직을 했다고 아버지께 인사 온 사촌형님과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아버지는 “우짜든동 신부해라”는 말씀을 꺼내셨다. 길을 나선다고 인사하는 형님에게 어깨를 다독거리면서 다시 한 번 “우짜든동 신부해라”고 하셨다. 형님은 공손히 “예, 열심히 신부하겠심더”하고 힘주어 안심시키셨다. 아버지와 형님은 ‘신부’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렀다. 형님은 한 직장에서 정년퇴직했다. 당부하시던 아버지도, 대답하던 형님도 오래전에 저 세상 사람이 됐다. 요즘은 신부라는 말을 좀처럼 하지도 않고 듣기도 어렵다. 취직하기가 어렵고, 또 취직했다고 해서 어른을 찾아 덕담을 듣는 미풍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한자 신포(辛抱), 신망(信望)을 모두 ‘신부(しんぼう)’로 읽는다. 신포(辛抱)는 고추같이 매운 것을 참고 견딘다는 말이다. 신망(信望)은 영어의 콘피던스(confidence)로 자신감, 신뢰, 확신, 신용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필자의 견해이지만, 직장살이에서 ‘고추같이 매운 일상’의 개념보다 직장에서 ‘믿음을 주는 사람’의 인식을 심어준다는 의미에서 ‘신부(しんぼう)’는 ‘辛抱’보다 ‘信望’으로 해석함이 옳지 않을까.

믿음 즉 신(信)은 고금을 통해 강조되는 말이다. 오륜(五倫)에서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하여 친구 사이의 믿음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선종의 제3대 조사인 승찬이 지은 책 이름이 ‘신심명(信心銘)’이다. 불교 역시 믿음부터 시작한다. 원효스님의 저서 ‘기신론(起信論)’ 역시 믿음을 일으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큰 법회를 개설하는 취지를 밝히는 글인 ‘수설대회소(修設大會疏)’에서도 믿음을 강조한다. ‘부신심이춘행만국(赴信心而春行萬國)’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즉 믿는 마음이 있어야 모든 것이 봄길 걷듯 한다는 말이다. 긍정적 마음에서 출발한다면 여러 나라를 순행하더라도 피곤함이 없이 봄나들이하는 기분일 것이라는 말로 해석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서 ‘유(唯)’자를 ‘신(信)’자로 바꿔도 무난하다. 모든 것은 믿는 마음 즉 긍정적 마음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남녀 사이에도 믿음 즉 신(信)은 중요하다. 춘향과 이 도령 사이가 그랬다.

일본 엔카 <長崎は今日も雨だった·나가사끼는 오늘도 비가 내리네>의 노랫말에도 믿음에 관한 말이 나온다. “당신 한사람에게 걸었던 사랑/ 사랑한단 그 말을 믿었었지….”

가수 남인수 노래〈청춘고백〉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몹쓸 것 이내 심사/ 믿는다 믿어라 변치말자/ 누가 먼저 말했던가….’ 배신은 남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여자도 한다.

가수 도성이 부른 노래 <배신자>에 이런 노랫말이 있다. ‘얄밉게 떠난 님아, 얄밉게 떠난 님아/ 내 청춘 내 순정을 앗아버리고/ 얄밉게 떠난 님아/ 더벅머리 사나이에 상처를 주고/너 혼자 미련 없이/ 떠날 수가 있을까/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

배신은 남자 여자 구분이 없다. 김건모의 노래 <잘못된 만남>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난 내 친구도 믿었기에/ 난 아무런 부담 없이 널 내 친구에게 소개 시켜줬고/ 그런 만남이 있은 후로부터 우리는 자주 함께 만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함께 어울렸던 것뿐인데/ 그런 만남이 어디부터 잘못됐는지/ 난 알 수 없는 예감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을 때쯤/ 넌 나보다 내 친구에게 관심을 더 보이며/ 날 조금씩 멀리하던….’

믿음, 소망, 사랑 중에 믿음이 제일이다. 엄마를 따르는 애기, 목자를 따르는 양떼,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 모두가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믿음 뒤에는 반드시 실천이 따라야한다. <야고보서>에 이런 내용이 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화엄경>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이다.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을 지키며 그 믿음을 실천해야 한다. 믿음의 반대가 배신(背信)이다. 배신은 결코 입에 담지 말아야할 단어이다. 오빠도 마냥 믿을 수 없다. 자고나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상에 살다보니, ‘신부’를 당부하던 그 시대가 그리워진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박사·철새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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