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 부조화(認知 不調和)’
‘인지 부조화(認知 不調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6.07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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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속의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내는 민감성’으로도 풀이되는 ‘성인지 감수성(性認知 感受性)’이란 용어를 깨우치는 데 제법 몇 년이 걸렸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난해한 용어가 등장해 나의 빈약한 지식곳간을 또 한 번 흔들어 놓는다. 중국어로 ‘인지실조(?知失?)’라는, 난생처음 접하는 심리학용어 ‘인지 부조화(認知 不調和)’가 그것. 흥미로운 것은 이 두 가지 용어가 이른바 ‘오거돈 사건’에서 동시에 쓰였다는 사실이다.

‘인지’와 ‘부조화’가 어떤 뜻인지는 어느 정도알겠는데 ‘인지 부조화’란 용어는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한데 모처럼 들른 인터넷사전마다 조금씩 풀이가 다르다. 이 낯선 용어가 국내에 선보인 지 일천한 탓일까? 그래도 한 가지 동일한 것은 있다. ‘인지 부조화 이론’의 창시자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어(Leon Festinger)’라는 점이다.

이해도 도울 겸 그의 실험사례 하나를 끌어내자. 페스팅거는 그의 동료와 신도인 척하며 사이비종교집단에 들어가 신도들을 관찰한다. 신도들은 ‘며칠 후에 종말이 오니까 구원받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교주의 말을 믿고 있었으나 종말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신도들은 ‘종말이 안 왔으니 그동안 우리가 믿었던 것이 엉터리’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는 대신 ‘우리가 간절히 빌었으므로 신이 감동하셔서 종말이 오지 않았다’며 자신들의 신념을 합리화했다.

어느 사전 편집자는 ‘인지 부조화’의 유사용어로 ‘자기합리화’를 대비시킨 다음 사이비종교 종말론자의 예를 들며 ‘인지 부조화’와의 의미상 차이를 설명한다. 종말이 온다고 설레발을 쳤는데 오지 않자 “그럴 리가 없어!” 하면서 멘붕 상태가 된 모습이 ‘인지 부조화’이고,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서 멸망을 피해 갔다!”며 자위하는 모습이 ‘자기합리화’라는 것. 그런데 혹자는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라는 자기합리화가 ‘인지 부조화’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어쨌거나 뜻풀이에 혼란을 가져온 주인공은 부하 여직원 강제추행 사건을 제 입으로 시인한 오거돈 직전 부산시장이다. 지난 2일 오후 재판부가 그의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피해여성은 이틀 후 입장문을 내고 자신의 심경을 밝힌다. 피해여성은 “영장실질심사에서 나온 오 전 시장의 주장에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혐의는 인정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는 말의 모순에서 대형 로펌의 명성을 실감한다”고 꼬집는다.

특히 오 전 시장에 대해서는 “향후 재판에서는 최소한의 합리적 반론으로 대응해 달라”면서 “전관 출신 변호사들을 선임해 ‘인지 부조화’를 주장하는 사람에게서 사과의 진정성을 찾을 수 없다”는 말로 그의 아픈 데를 찌른다. 피해여성의 말대로라면 ‘인지 부조화’란 표현을 ‘전관 출신 변호사’가 구사했다는 얘기다.

며칠 후 나는 첩보나 정보를 휴대폰처럼 휴대하고 다닌다는 지인으로부터 오 전 시장에 대한 ‘따끈따끈한 첩보’ 몇 가지를 주워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중에는 부산시장 재임 시 회의도중 조는 일이 잦았고, 보좌진이 ‘남성호르몬’ 투약을 권했으며, 그러는 사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영상물 시청 횟수가 늘어났고, 그 양자의 기이한 조합이 ‘5분간의 추태’로 이어졌을지 모른다는 그럴듯한 첩보분석도 끼어 있었다.

그 후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인지 부조화’란 ‘국 따로 밥 따로’ 혹은 ‘머리 따로, 다리 따로’의 의미와 유사할지도 모른다는…. 좌우간 요즘은 ‘벨트 아래 문제’에 지나치게 너그럽던 사회 분위기가 ‘지는 해’ 신세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차제에 곡주(穀酒)에 관대한 문화도 차츰 고개를 숙이게 만들 수는 없을까?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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