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낯설게 보이는 순간
새롭고 낯설게 보이는 순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5.28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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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잠실 어느 홀에서 뮤지컬 ‘맘마미아’를 가족과 함께 본 적이 있다. 유명한 뮤지컬 가수가 나온다기에 선뜻 동참했다. 극중의 딸 소피가 결혼식을 앞두고 엄마가 사랑한 세 명의 남자 중에서 아빠를 찾는다는 코믹한 영국판 뮤지컬이다. 시종일관 아바(ABBA)의 신나는 명곡으로 점철된다. 진짜 아빠를 찾아가는 과정이 스릴 만점이어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중간 중간 출연자가 성이 차지 않을 땐 입에서 속된 말이 튀어나온다. ‘개나리 십센치야!’라고. 듣기엔 그다지 싫지가 않다. 노골적인 속어가 아니라 포장이 되어있는 듯 관객을 신선하게 해주니 오히려 흥미를 더해준다. 맘마미아(Mamma mia)는 이탈리아어로 ‘나의 엄마’라는 뜻이다. 놀랐을 때나 괴로울 때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감탄사다. ‘오 세상에 맙소사!’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속어는 정말 순화해서 써야 할 것 같다. ‘개나리, 십센치’ 정도라면 허락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마냥 긍정적이면서 유연한 언어로 순화되는 듯하여 나쁘지는 않다.

지난 이른 봄 아파트 자락 길에 개나리 군락지가 무더기로 있는 걸 봤다. 맑은 날 햇빛에 원색이 드러나는 개나리꽃. 단순한 노랑이 아니라 샛노랑색이다. 왜 ‘나리꽃’이라 하지 않고 ‘개나리꽃’이라 할까.

보통명사 ‘개’를 잠깐 보자. ‘개’(狗)라는 동물은 오랜 옛날 ‘가히’라고 말했다 한다. 15세기 문헌에서 흔하게 쓰였다고 하는데 아직도 경기도 방언에서는 ‘개’를 ‘가히’로 쓰고 있으니 신기하다. 모음 ‘ㅏ’와 ‘ㅣ’ 사이의 ‘ㅎ’ 소리가 차츰 약화되어 오늘날 ‘개’로 쓰이게 되었다.

‘개’라는 동물의 이미지를 보면, 순하게도 먹이만 주면 주인이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듣고, 나쁘게 말하면 줏대가 없고 충성스럽기 짝이 없는 놈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먹이를 아무리 줘도 주인을 할퀼 때가 있다. 싫으면 싫다고 표시하는 주관이 뚜렷한 동물이다. 그래서 개는 개새끼라고 하지만 고양이는 고양이새끼라고 말하지 않는가 보다.

접두어로 쓰일 때는 몇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비하적이고 비속적인 용도로 쓰인다. ‘매우’라는 강조의 뜻이 부가되어 개망나니, 개무시, 개망신과 같이 부정적 이미지가 많다. 또 하나는 야생상태 그대로, 질이 떨어지는, 유사하지만 모양이 다소 다른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개살구, 개꿈, 개나리 같은 말이다.

이와 달리 최근 들어 젊은 층에서는 새로운 기능으로 사용되는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개먹다, 개마시다, 개찌다, 개좋다와 같은 신조어들이다. 예를 들면 “어제 MT 갔다 와서 안주 개먹고 술도 개마셨어.” “나, 살 개쪘지?” 카페 옆 테이블에서 소리 내어 떠드는 대학생들의 말이다. 그뿐이랴. 순화된 말 중에는 긍정의 의미로 사용되는 ‘오늘, 날씨가 개좋다’라는 표현도 자주 들린다. 주인과 함께 걸어가는 개의 모양새가 멋지게 보여서 그렇게 말하는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긴 털이 팔랑팔랑 물결쳐 아름다워서인가. 아무튼 그런 대형 개의 느낌이라 어쩐지 기분 좋은 뉘앙스를 풍기니까 그렇게 말하나보다.

살다보면 우린 수많은 삶의 문제와 부딪쳐 고민에 빠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상대에게 적절한 말과 행동을 건네는 것도 한 방법일 테다. 삶의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지혜란, 상대로부터 ‘듣는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 하지만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어서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일상에서 가끔 새롭고 낯설게 보이는 것도 삶의 큰 활력소가 된다. 그곳에서 우린 소소한 행복을 조금씩 찾아내는 순간, 삶의 진가를 발견해 낼 수 있지 않을까.

김원호 울산대 명예교수, 에세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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