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준의 신변잡기]애완동물 관리, 이대로 좋을까?
[박재준의 신변잡기]애완동물 관리, 이대로 좋을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5.27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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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 관한 필자의 견해는 혐오와 옹호 사이에서 철저히 중립적이다. 이런 견해는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어릴 적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그 무렵 집에서 기르던 짐승으로는 소와 돼지, 닭과 개, 토끼가 있었고 이 녀석들은 농사일을 돕거나 가계의 부수입원이 되기도 했다. 먹을 것도 없는 처지에 집짐승의 사료까지 걱정한다는 것은 감히 꿈도 못 꿀 일이었다.

40여 년 전, 다니던 회사(한전)의 일로 ‘기회와 풍요의 나라’ 캐나다에서 일 년 남짓 머문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캐나다인들이 집에서 동물과 함께 지내는 모습은 무척 낯설었고, 온 집안이 집짐승의 털과 먼지로 뒤덮인 모습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소파에 앉기가 싫었다. 그러나 집주인의 체면을 봐서 억지웃음에 “멋진 녀석”이라는 거짓칭찬까지 섞어서 맞장구치며 비위를 맞추어 주었다. 점심이라도 한 끼 얻어먹을 요량으로….

캐나다 친구인 집주인 글렌 컬프(Glen Culp)씨는 조랑말을 키우고 있었고, 이름 생각이 안 나는 그의 자녀는 길이가 2미터쯤 되는 비단뱀을 취미삼아 돌보고 있었다. 그런데 캐나다 친구는 이 비단뱀에게 집에서 키우던 모르모트를 매일 몇 마리씩 먹잇감으로 던져주곤 했다.

연수부서에 소속된 여성담당자에게 얽힌 기억도 있다. 그녀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의 일이다. 부부밖에 없는 단출한 집에서 맛있는 만찬을 즐기고 나서 담소를 나누던 중이었는데 그녀가 느닷없이 송아지만한 개 두 마리를 끌고 와서는 자랑스레 소개하는 것이 아닌가. 황당하게 느껴졌던 그녀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자. “저의 개는 잘 생긴 수놈이고, 남편의 개는 얌전한 암놈이죠. 주말에 얘들을 자가용경비행기에 태우고 북미지역을 여행하는 게 우리 부부의 유일한 취미인 셈이죠. 얘들 돌보기도 바쁘고 벅찬데 어떻게 2세 생각을 하겠어요.”

이 말에 한국에 있는 아들,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늘어놓던 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여성이 얌전한 암캐를 선호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은 여지없이 뭉개지고 말았다. 엄청난 문화충격이었다. 비록 개인 프라이버시(privacy)라 할지라도, 그때나 지금이나 ‘왜?’라는 궁금증은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다.

세상 살기가 좋아지고 아파트라는 닫힌 공간이 보편화되면서 온갖 동물들이 ‘반려(伴侶)’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수입되면서 그들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기억 저편에 묻혀있던 캐나다에서의 황당한 기억들이 데자뷔로 떠오른다. 이젠 우리나라도 캐나다를 닮아가는 것은 아닐까.

애완동물이 그 소유자에게는 각별한 사랑과 관심의 대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서가 다른 제삼자에게는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한번 눈여겨보자. 공원이나 길거리에 널브러진 애완동물의 배설물, 행인을 향해 짖는 위협적인 소리, 느슨해서 언제 풀릴지 모르는 목줄까지…. 여러분도 느꼈을 것이다. 헐렁한 목줄이 곁을 스쳐갈 때의 그 오싹함, 재수 사납게 배설물을 밟았을 때의 그 찝찝한 촉감….

혹자는 웬 고리타분한 소리냐고 핀잔할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다스림 받을 존재가 상전노릇 하는 꼴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또 동물 애호가가 늘면서 일부 정치인들이 애완동물 건강보험 법률안까지 발의한다는 소식에는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구약성경 창세기 9장 3절에 이런 구절이 있다.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되리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리라.” 이 말씀을 따르자면 모든 짐승들은 다스림을 받고 결국에는 인간에게 지배당할 운명에 놓인 존재들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견해가 다른 분들의 신랄하면서도 진지한 반론을 기다리고 있을 참이다.

박재준 에이원공업사 대표, NCN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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