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변천수행의 중심도량 통도사
시대적 변천수행의 중심도량 통도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5.2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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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는 신라 26대 선덕여왕 시대 자장스님에 의해 창건된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이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영축총림의 수행도량이다. 통도사는 시대적 변천수행(=시대적 변천에 순응하는 수행)의 중심도량이기도 하다. 통도사 승려는 세상 보는 통찰력으로 앞서 실천하고, 자급자족하며, 꾸준히 찾아서 익히고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 수행승임을 자부한다. 근·현대 통도사 수행승 이동인 스님, 김구하 스님, 윤월하 스님, 조성파 스님을 중심으로 시대적 변천수행의 흐름을 살펴본다.

첫째, 이동인은 개화승(開化僧)이었다. ‘개화(開化)’는 사람의 지혜가 열리고 새로운 사상과 풍속 따위를 받아들여 시대적으로 발전시켜 앞서나가는 것을 말한다. 개화승은 이러한 것을 실천한 승려를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동인을 개화승이라 부른다. 울산대 노성환 교수는 2019년 2월 일본문화학보 제80집에 발표된 그의 논문 <개화승 이동인의 출신 사찰에 관한 고찰>(한국일본문화학회)에서 여러 문헌자료를 근거로 이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동인(李東仁, 1849?~1881)은 사전적으로 설명하자면 조선 후기 불교승려이자 개화사상가이다. …본고는 이와 같이 눈을 감고 외면한 것을 다시 눈을 뜨고 바로 보기를 기대하며 출신 사찰에 관한 자료들을 열거하여 이동인이 통도사 출신 승려임을 밝힌 것이다. …이동인은 조선의 근대화를 갈망하는 통도사 문도들의 대표로서 일본행을 택한 개화승이었다. 이처럼 통도사는 일찍부터 개화사상에 눈을 뜨고 있었음이 이동인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법명은 천호(淺湖)이다.

둘째, 김구하 스님은 독립운동가였다. 2004년 12월 20일자 <불교신문>은 김구하 스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통도사 구하스님이 일제 때 독립운동자금을 비밀리에 지원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구하스님은 일제 때 대찰 주지를 지내면서도 비밀리에 독립자금을 지원, 이 때문에 통도사 소유의 전답 상당량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당시 통도사 사중 일부가 반발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동민 수원시 전문위원은 지난 19일 통도사에서 열린 월하스님 1주기 추모 학술세미나에서 ‘근대시기 통도사의 변화와 김구하 스님의 활동’이라는 논문에서 “구하스님이 독립운동자금으로 1천300만원을 비밀리에 지원했다는 것이 논란의 여지로 남아있는데, 1951년 통도사 주지와 소임자들에게 제출한 진정서에 따르면 독립운동 자금으로 1천300만원이 지출되었고 당시 김해 및 양산의 토지 6천500평을 처분하여 변제했다는 구하스님의 진술은 관련 자료는 없지만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구하(九河, 1872~1963)스님은 영축총림 통도사의 기틀을 놓은 대표적인 스님이었다.

셋째, 윤월하 스님은 종단 개혁에 앞장섰다. 월하(月下, 1933~2003)스님은 1950년도부터 30여 년간 통도사의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으로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1954년 효봉·청담·인곡·경산 스님과 사찰정화 수습대책위원회에 참가해 불교 정화에 앞장섰다. 1956년 통도사 주지로 취임한 후 강원과 선원을 복원하며 영축총림의 초석을 놓았다. 1958년 조계종 총무부장 권한대행, 1958년 조계종 감찰원장, 1960년 중앙종회 의장직을 수행했다. 1970년부터 통도사 조실로서 대중을 인도했다. 1975년 동국학원 재단이사장, 1979년 조계종 총무원장, 1980년 종정 직무대행 등을 역임했고, 1984년에 영축총림 방장으로 추대됐다. 1994년 종단 개혁 당시 개혁회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같은 해 제9대 종정으로 취임했다.

법호는 노천(老天)이고 법명이 월하(月下)이다.

넷째, 성파스님은 ‘영축문화연구원’을 개원했다. 방장 성파스님은 평소 문화와 예술의 현대적 감각으로 불교를 알려야 한다고 강조하며 실천하신다. 지난 14일 영축총림 방장 중봉 성파스님(82)을 취재한 김보은 기자의 기사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성파스님은 2017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3년째, 반구대암각화(가로 6.7m/세로 4.3m), 천전리각석(가로 9m/세로 3m) 등 두 암각화의 그림을 실물 크기로 재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15일 방장스님을 만난 홍영진 기자의 인터뷰 기사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비우고, 채우고, 실천하고, 자제하고…. 세상 보는 통찰력을 키우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테니, 이를 꾸준히 찾아서 익히고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겠지요. …원래부터 울타리나 벽 자체를 안 두고 살아왔습니다. 내 정신과 생각은 아무리 쇠통으로 잠가놔도 나갈 수 있고 다시 들어올 수 있어요. 속세에서는 가정, 직장, 취미, 여가 등등을 구별하는지 몰라도 나는 그렇지 않아요. 본업이다, 부업이다 가리지 않습니다.”

현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은 문화와 예술을 통해 불교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뜻으로 통도사에 ‘영축문화연구원’을 개원했다. 통도사가 시대적 변천수행의 중심도량임을 확신한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박사·철새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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