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자리
아버지의 자리
  • 윤경태 기자
  • 승인 2008.01.2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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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부터 끼니때만 되면 밥상머리에 온 가족이 둘러 앉았다. 식구가 많아 저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먼저 달려가곤 했다.

무릎이 맞닿아 엉덩이를 뒤틀면서 자리를 얻어내기 위한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아버지의 눈길을 잘 받을 수 있고 맛있는 반찬 하나라도 더 받아 먹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형제간 경쟁이 치열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 가운데서도 가장 넓고 큰 자리는 항상 비워져 있었다.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의 자리였다. 아버지가 계시건 계시지 않건 간에 아버지의 자리는 항상 확보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회의 가장 작은 구성원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자리가 얼마나 크고 할 일이 많은 것인지를 요즈음의 현실에서 새삼 느끼고 있다.

언젠가 한 지인이 “옛날부터 아버지의 자리는 나랏님과 스승과 동격의 자리로 일컬어질 만큼 권위가 있었지만 요즈음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고 넋두리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세태풍속이 만연한 가운데 지난해 연말에는 나라의 아버지를 뽑는데 12명, 거기에 예비후보까지 합쳐 줄잡아 80여명에 이를 만큼 건국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이 나랏님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었다. 결국은 역대 최악의 투표율속에서 가장 많은 표차이라는 진기록을 만들면서 나랏님이 선출됐다.

이제 현행법상 5년마다 바뀌는 나랏님 즉 아버지의 밥상이 다음달 25일부터 만들어진다.

그런데 근간에 와서 아버지의 밥상을 준비하고 있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일부 관계자들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는 바람에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아버지의 눈에 띄기 위해 언론사 간부 성향분석이라는 반찬을 밥상위에 올려 놓기 위한 철없는 자식의 과잉 효도로 웃지 못할 헤프닝들이 간헐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아직 밥상머리맡에 앉아 보지도 못한 아버지가 입맛도 다셔보지 못한 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자칫하면 자식들의 과잉효도로 인해 아버지의 자식사랑이 넓디넓다는 뜻의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를 간다’ 속담을 뒤집을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술수를 가리지 않을 만큼 아버지의 눈에 띄기 위한 자식들로 가득 채워질까하는 우려가 생겨나질 말았으면 하는 바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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