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준의 신변잡기]코로나 덕분에…
[박재준의 신변잡기]코로나 덕분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4.27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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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은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도 다 쏟으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나 위하여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을 두려워 하리요./ 나는 일사의 각오와 다짐이 있을 뿐입니다.” ‘일사각오(一死覺悟)’! 일제의 신사참배(神社參拜) 요구를 끝내 거부하다 1944년, 47세에 평양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주기철 목사(1897~1944)가 남긴 그의 마지막 말씀이다.

온 나라가, 아니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여파로 숨을 죽이고, 급기야는 ‘사회적 거리두기’ 시책으로 한동안 교회예배까지 멈춘 것이 바로 어제오늘의 일. 대부분의 성도들은 가정에서 TV나 휴대폰으로 영상예배를 보며 신앙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쏠쏠한 재미도 없지는 않았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명 설교를 골라 듣는 특권을 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유시간을 알차게 보낼 방법을 궁리하면서 서재 앞을 기웃거리던 어느 날 문득 시야에 잡힌 것이 있었다. 『나의 아버지 순교자 주기철 목사』란 먼지 묻은 책이었고, 그 순간 깜짝 놀랐다. 이 귀한 책이 여기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솔직, 그냥 지나칠 뻔했다. 책 제목이 영문(『More than conquerors』)인데다 우리말 제복은 그 밑에 조그만 글씨로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걸 천재일우(千載一遇)라고 했던가.

주 목사를 증언하는 책이 어떤 경로로 내 초라한 서재 한구석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분명 아내는 아닐 터이고, 그렇다면 서울 사는 아들, 아니면 며느리? 아들 내외는 일 년에 두 번, 명절 때마다 면전에 나타났으니, 그 책이 어느 해 명절쯤 여행용 가방 속에 딸려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고맙고 대단한 선물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교회 집회와 강연 때 자주 회자되던 그 이름 주·기·철 목사. 그때 느꼈던 감동의 여운이 마음 한 편에 염장(鹽藏)된 채 어느덧 반 백 년을 넘겼다. 이제야 내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마음의 숙제를 말끔히 덜어낸 듯 훨훨 날아갈 기분이었다. 시쳇말로 원님 덕에 나팔 분 꼴이요, 월척이 제 발로 걸려든 셈 아니던가.

책의 저자 주광조 장로(1932~2011)는 의연하게 순교(殉敎)의 길을 택한 주기철 목사의 막내아들로 극동방송 부사장, 영락교회 장로를 역임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철없던 시절, 혈연만이 간직할 수 있었던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독특한 필치로 진솔하게 피력한다.

“그분은 우리 한국교회사나 민족사에 하마터면 끊어질 뻔한 신앙의 전통을 단절 없이 이어주는 한 알의 썩은 밀알이 되셨고, 훗날 많은 열매 맺기를 기대하며 마지막까지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시며 저 하늘나라로 가셨다.” 저자의 부친에 대한 회고의 한 대목이다. 이 책은 구성이 독특했다. 영문과 한글을 나란히 나열했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골라 읽을 수 있게 편집했다. 필자는 영문으로 한 번, 한글로 두 번 읽었고 그때마다 눈시울을 적셔야만 했다. 평양 산정현교회의 교인과 가족들의 기도, 그리고 주 목사 자신의 거룩한 분노가 전편에 끈끈하게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마지막 설교의 하이라이트를 인용하고 싶어진다. “천국에서 내가 준 십자가는 어찌하고 왔느냐?고 예수님이 물으시면 내가 어떻게 주님의 얼굴을 뵐 수 있겠습니까? 오직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진정한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 주기철 목사. 책을 읽고 그분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된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신앙인 여부를 떠나 독자 제현에게 일독(一讀)을 권하고자 한다.

박재준 에이원공업사 사장, NCN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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