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 ]써야 할 문장이 남아있는 동안 할 일
[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 ]써야 할 문장이 남아있는 동안 할 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4.1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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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박홍규-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남아수독오거서(南兒須讀五車書), ‘남자라면 모름지기 수레 다섯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쯤 되겠지만 다섯 수레란 딱히 책의 분량을 말한다기보다 그만큼 책을 사랑한다는 의미로 읽는 게 맞겠다.

이 말은 중국 전국시대 인물인 혜시(惠施)라는 인물의 됨됨이를 보고 장자(莊子)가 한 말이다.

즉 당대 지식인의 표본으로 삼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수레 다섯 분량의 책’이란 지금으로 본다면 어마어마한 양은 아니었을 것이다. 혜시(惠施)가 살던 시대엔 아직 종이가 없었다. 따라서 문자적 해석에만 굳이 매달릴 필요는 없다. 다만 정신적 분량과 가치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현재 우리나라의 독서 현황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2년마다 통계를 내놓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에 따르면 만 19세 이상 남녀 6천명과 초등 4~6학년 학생, 고등학생 3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9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를 보면 아쉽기 그지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책을 너무 안 읽는다는 것이다. 대답의 절반 이상이 ‘시간이 없어서’라고 대답했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는 ‘학교나 학원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라고 하는 응답이 단연 높았다.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외에 바뀐 환경도 한몫했다. 유튜브 등 콘텐츠의 다양한 환경이 책을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으로 만든 것. 성인 독서율도 연간 52.1%로 조사되었는데 독서량은 6.1권으로 2017년에 비해 7.8p, 2.2권 감소했다.

성인 독서율의 하락률이 눈에 띄는 가운데 50%를 겨우 지켜낸 것이 다행이라면 위로가 될까?

어쩌면 다음 2021년 조사에는 50% 아래로 낮아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일 년 내내 책 한 권 읽지 않는 이들이 더 많아진다는 우울한 미래의 도래다.

‘마오쩌동의 일기’를 읽다 보면 서산유로(書山有路)란 속담이 나온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을 평생 자신의 무게인 양 지고 가고 있는 분이 있다.

영남대학교 박홍규 명예교수. 평소 빈센트 반 고흐를 사랑해서 그에 대한 저술도 많이 남긴 분이지만 그는 살면서 몰라도 될 것은 과감히 버리고 꼭 알아야 할 것을 쟁취하기 위해 고독으로서의 책 읽기를 택했다. 책 속의 길을 찾아서.

출판인 박지원 씨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꾸며진 이 책은 고독한 독서인 박 교수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2018년 퇴직 이후에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학교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노교수의 뒷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환해진다.

현직에 있을 때 노동법 교수로서 노동 현실에 대한 올곧은 발언과 주장을 펼쳐 반대편으로부터 핍박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진영을 떠나 책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의 선택은 패거리 문화에 경악, 단독자(單獨者)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독서, 고독, 사회, 인간이란 네 가지 키워드만 가지고 사는 사람. 그가 말하고자 하는 책 읽기로서의 삶은 진실한 변화의 도출을 위해서다.

위에서 피력한 바이지만 학생들이 책을 읽지 못하는 환경에 대해서도 그는 따끔한 질책을 한다.

‘교과서를 믿지 마라. 교과서 미신에서 벗어나라’고. 그리고 책도 음식처럼 편식을 하면 안된다고 강조하는데 이러한 편식을 조장하는 게 일부 번역자와 대중 영합적인 출판사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그 예로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에 관한 책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지만 정작 이들이 사회주의 경제학자라는 사실에는 왜 주목하지 않는지 묻고 있다. 부분이 전부로 읽히는 오해를 조심해야 된다는 말로 이해하면 되겠다.

비대면(非對面) 시대다. 소란과 소동 속에서 벗어나기 좋은 시간이며 기회다.

박 교수의 말처럼 ‘무리 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을 실천해볼 수 있는 때, 책 한 권 펼치며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드는 세계를 경험하는 멋있는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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