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선재의 법률산책]‘자차 출퇴근 사고’의 산재 인정 문제
[류선재의 법률산책]‘자차 출퇴근 사고’의 산재 인정 문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4.08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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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전 세계가 코로나19 사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이 시도되는가 하면, 많은 기업들이 재택근무 연장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사태 확산을 막는 데 힘쓰고 있다. 그러나 재택근무를 언제까지 연장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어서 근로자들도 생계와 업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출퇴근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북적이는 대중교통 대신 자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지하철이 없는 울산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과거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상의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발생한 사고’만 출퇴근 재해로 규정했다. 그러나 다행이랄까. 헌법재판소는 2016년 9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이에 따라 2018년부터 시행된 현행 산재보험법은 ‘그 밖의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도 출퇴근 재해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즉, 자신의 차 또는 오토바이 등을 몰고 출퇴근하던 중 발생한 사고도 원칙적으로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것이다.

다만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예외를 어떤 경우에 인정할 것인지, 즉 자차를 이용하다 일어난 출퇴근 재해 중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가 어떤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이 예외에 해당된다면 산재보험법에 따른 각종 보험급여를 지급받지 못하게 될 것이므로, 매우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이와 관련해 서울행정법원에서 눈길을 끄는 판결을 내려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2019구합64471 판결).

세종시의 한 마트에서 일하던 이 사건의 재해자는 근무를 마치고 업무와 무관하게 지인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친구의 집에서 잠을 잤다. 이튿날에는 혈중알코올농도 0.082% 상태로 친구의 집에서 차를 몰고 출근하다가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을 한 끝에 마주 오던 차량과 충돌해 숨지고 말았다.

이에 대해 담당재판부는 “산재보험법은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망 등은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으며(제37조 제2항), 이 사건 사망의 경우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사망 등이 발생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산재보험법 규정이 개정된 이후 아직은 관련 판례가 많이 축적되지 않은 상황이므로 분명히 참고할 만한 사안이다. 다만, 이른바 ‘12대 중과실’을 범한 경우라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못할 것이라고 성급히 결론을 내려서는 곤란하다. 위 사안의 경우, 재해자의 음주운전, 중앙선 침범 및 업무와 무관한 술자리로 인해 자신의 주거지가 아닌 친구의 집에서 출근길에 나선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견으로는, 현행 법령의 규정상 비록 재해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산재보험법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공정하게 보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위 판결의 판단근거가 된 법률규정 또한 ‘고의, 자해행위나 범죄행위’라고 대등하게 나열함으로써, 단순히 범죄행위라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고의 또는 자해행위와 동일하게 볼 수 있는 경우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읽히기 때문이다.

산재보험법 개정 과정에서 제안된 여러 법안 중에는 근로자의 중대과실로 재해가 발생한 경우 보험급여 지급을 제한하려는 법안도 있었다. 그러나 논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 현재의 산재보험법은 이 같은 보험급여 지급제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이는 근로자를 폭넓게 보호하려는 입법자의 입법적 결단으로 보아야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 시행 3년째인데도 ‘자차를 이용한 출퇴근 재해’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론이 정립되지 않은 듯하다. 그 불이익은 온전히 출퇴근 재해를 당한 근로자의 몫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류선재 고래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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