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격전지’ 울산왜성 보수정비 추진
‘정유재란 격전지’ 울산왜성 보수정비 추진
  • 김보은
  • 승인 2020.04.0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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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현장서 기술자문회의 개최… 역사·문화 가치 재조명 위한 AR 콘텐츠 개발도
울산 중구는 지난 3일 정유재란 최대 격전지인 울산왜성의 보수정비를 위해 현장에서 기술자문회의를 개최했다.
울산 중구는 지난 3일 정유재란 최대 격전지인 울산왜성의 보수정비를 위해 현장에서 기술자문회의를 개최했다.

 

울산시 중구가 정유재란(1597~1598년) 당시 조명연합군이 일본군과 최대 격전을 벌였던 울산왜성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문화재 원형을 보존하기 위한 보수정비를 추진한다.

중구는 지난 3일 학성공원 일원의 울산왜성 중 2구간 내 대곡륜 북동 모서리 우각부 부분 300㎡에 대한 보수정비 현장에서 기술자문회의를 개최했다고 5일 밝혔다.

이 자리에는 중구 소속 담당 공무원을 비롯해 울산시 문화재위원인 울산대학교 신재억 교수와 한삼건 교수, 울산과학대학교 한충목 교수 등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날 자문위원들은 해당 구간의 평판재하시험 결과에 따른 기저부 지내력을 검토하고, 체성 및 우각부, 뒤채움석 쌓기 방법, 구조, 기울기, 신재 교체 등 성벽 보수·보강 방법과 성벽 유구 재현 방법에 대해 조언했다.

이번 보수정비는 중구가 2014년부터 추진해온 울산왜성의 보수정비 공사의 일환이다. 중구는 도심 속 공원으로 주민 이용이 많은 울산왜성을 이용하는 보행자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해당 보수정비 공사를 실시했다. 동시에 울산왜성의 문화재적 가치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보수정비도 병행했다.

울산왜성은 정유재란 당시인 1597년 일본군 장군인 가토 기요마사가 병영성과 울산읍성 등의 돌을 가져다 일본식으로 축성했다.

이곳은 1597년 12월 23일부터 이듬해 1월 4일까지 13일간 조명연합군과 일본군이 치열하게 제1차 울산성 전투를, 1598년 9월 21일부터 10월 6일까지 16일간 제2차 울산성 전투를 벌인 격전지다.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모든 군대의 철수명령이 떨어짐에 따라 11월 초순께 울산왜성의 왜군이 돌아갔다.

조정에서는 경상도체철사 이덕형의 ‘울산읍민들이 왜적 토벌의 공이 가장 많다’는 보고를 받고 이 공을 인정, 선조 31년(1598년) 12월 21일 울산군을 울산도호부로 승격시키고 부사도 임명했다.

정유재란 이후 울산왜성은 한동안 조선 수군에 의해 선착장 등의 항구시설이 그대로 사용되는 등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는 게 중구의 설명이다.

중구에 따르면 현재 국내 왜군이 쌓은 왜성은 11곳 정도 분포하고 있으며 이 중 전투가 직접 벌어진 곳은 순천왜성과 사천왜성, 울산왜성 3곳이다.

울산왜성은 시간이 지나오며 ‘울산공원’에서 ‘울산학성’, 다시 ‘울산왜성’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현재 울산 시민의 도심 속 공원으로 변화했다.

중구는 이 같은 역사·문화적 가치를 가진 울산왜성을 제대로 알리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보수정비와 함께 2천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증강현실(AR)을 개발한 뒤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왜성을 일제의 잔재로 보고 청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중구 관계자는 “왜군이 쌓았다고 해서 단순히 없애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곳에서 조명연합군이 치열한 전투를 하고 왜적을 물러나는데 큰 기여를 한 공간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각해 그 가치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화재적 가치 외에도 주민들의 도심 속 휴식처로 널리 이용되고 있는 만큼, 보수정비를 통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겠다”고 덧붙였다. 김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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