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와 거리를 두는 사례들
‘사회적 거리두기’와 거리를 두는 사례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3.24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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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당국이 아무리 목청껏 외쳐도, 국무총리가 아무리 사정을 해도, 한쪽 귀로 흘려듣는 개인이나 단체는 나오기 마련이다. WH O(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겠다고 ‘판데믹(pandemic=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까지 선포한 이 시점에 국내외를 불문하고 온 지구촌이 한번 지켜보자고 소리 내어 외치는 대원칙이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일 것이다.

이 대원칙은 그러나 경제분야 전반에 치명타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생기면서 뿌리부터 흔들리는 조짐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완화’ 분위기를 이끌어내려고 23일(현지 시간) ‘셧다운(shutdown=일시적 부분 업무중단 상태) 중단 논쟁’에 불을 붙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 시도에 앞장서는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계와 재계 일각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과도한 도시 셧다운 조치가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갈 것”이라며 격리를 조기에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하지만 당장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다. “경제문제에 대한 조바심 때문에 대재앙을 맞을 것이”라는 비난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그 비슷한 분위기가 대한민국, 그리고 울산이라고 해서 존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경제 전망이 워낙 어둡다 보니 당장 호구지책이 막막해서 안 그렇겠느냐는 동정론이 고개를 드는 것도 사실이다.

몇 가지 실제 사례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울산지역 학원가에서 들끓는 여론이 아닐까 한다. 24일 울산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울산지역 학원과 교습소 10곳 중 8곳 이상이 잠시 닫았던 문을 최근에 다시 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일(금) 조사에서는 학원과 교습소 3천435곳 가운데 2천6곳, 58.4%가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으나 나흘이 지난 24일(월)에는 17.4%인 598곳만 문을 닫았을 뿐 나머지 82.6%는 지침이라도 받은 듯 다시 문을 연 것이다.

울산시와 시교육청의 강력한 ‘휴원’ 권고도 아랑곳없이 학원들이 뱃심 좋게 문을 열어젖힌 이유는 무엇일까? 학원운영자들은 ‘생계난’을, 학부모들은 ‘학업공백’을 각각의 이유로 내세운 모양이다.

특히 학원운영자들은 정부 지원이 한에 안 찬다고 불만이 대단하다는 소리가 들린다. 정부가 휴원하는 학원에 최대 7천만원까지 빌려주고 최대 1억원까지 대출특례보증을 서준다지만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학원업계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울산시학원연합회를 통해 요구하는 것이 ‘인건비 지원’과 같은 직접적 지원이다.

학원연합회는 학원들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흔쾌히 협력하고 있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긴급돌봄교실보다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다”면서 “학원을 ‘코로나19 감염의 온상’으로 취급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도 곁들인다. 어찌 보면 학원연합회가 대가족을 등에 업고 압력을 행사하는 모양새로 비쳐진다는 지적도 나올만하다. 만의 하나라도, 부산의 어느 학원처럼, 복수의 확진자라도 생긴다면 그때 가서 어떻게 해명할 것인지 되묻고 싶다.

‘집단감염 위험시설 운영제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인지 시교육청도 대응이 미온적이란 지적을 받는다. “강제 휴원 명령은 지자체 소관이어서 시교육청에서는 권고 정도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교육청 관계자의 말이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정부의 조치를 좇아 개학 예정일인 4월 6일 직전까지 만이라도 개원을 자제해 달라는 권유는 왜 강력하게 하지 못하는 것인가.

‘사회적 거리두기’와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사례는 또 더 있다. 중구청이 오는 27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약사동 일대에서 제3회 약사벚꽃축제를 열도록 허가해준 일이다. 이에 따라 약사동행정복지센터는 ‘겨울을 지나온 벚꽃, 당신의 마음에 피다’는 주제로 벚꽃축제를 밀어붙이겠다고 벼른다.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뜻에서 각종 공연이나 체험행사, 음식판매 같은 집단행사는 하지 않는 대신 170m 구간에서 자라는 40그루의 벚꽃나무에 야간조명을 입혀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남구청과 삼호동이 무거천 벚꽃축제를 일찌감치 접은 사실과는 사뭇 대조되는 대목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사례에서도 짐작이 가듯 코로나19 사태로 겪는 고충은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이 돼 보자. 나라 전체가 어렵고 국민 모두가 힘들어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정부가 ‘4월 5일까지 만이라도’ 하면서 국민들에게 하는 호소가 학생들의 개학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한 상황판단에서 내린 결단이란 사실을 왜 모르는가.

저마다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조기 종식’이라는 대의를 위해 잠시나마 소아를 희생할 줄도 아는 시민정신이 아쉬운 시점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허리띠를 같이 졸라매는 공동체의식(We-feeling)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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