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우리 숲이 되어
나와 너, 우리 숲이 되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3.2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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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면 학교는 입학식과 함께 봄의 설렘을 머금은 새로운 시작으로 언제나 생기가 돌았다. 교사, 아이들, 학부모에게나 3월 학교생활은 정신없이 바쁘게 흘러가지만, 늘 기다려지는 생동감의 시간이기도 하다. 올해 아이들 없는 3월의 학교는 어느 때보다 쓸쓸하다. 학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해 거듭 휴업이 연장되는 유례없는 3월을 보내고 있다. 학교 곳곳 아이들의 빈자리는 하루빨리 이 혼란과 불안이 지나갔으면 하는 간절함과 평범한 일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워지며 개학을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는 잠시 멈추었지만, ‘삶 자체가 배움’이라는 말이 더욱 실감나는 요즘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나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배우게 하는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의 지식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둔 ‘교과서’, ‘수업’이라는 정제된 형태의 가르침과 배움이 아니라 우리가 맞이하는 하루하루가 배움의 교과서이다. 지식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우리 아이들에게 귀중한 가르침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들의 삶 자체가 귀중한 배움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민주 시민을 길러낸다는 교육적 목표 아래 ‘민주 시민 교육’이라는 다양한 형태의 수업과 교육적 활동들은 그동안 학교 안에서 늘 이루어져 왔다. 역사적 사건들을 되짚어 보며, 또 때로는 교육 영상 자료를 통해서 교과 수업이나 창의적 체험 활동으로 이루어졌지만, 지식 위주의 지필 평가에 밀려 다소 뜬구름 잡는 것 같이 형식적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에 반해 지금 우리가 직면한 이 상황 자체가 민주 시민 교육을 위한 살아 있는 교과서이다. 민주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해 굳이 정리하고 암기하지 않아도 이 위기 상황 속에서 어떤 시민 의식을 갖추고 실천해야 하는지 그야말로 체득하게 되는 일상을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바이러스 확산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 일원으로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나와 우리 가족의 안전을 위해 우리 모두 서로 배려하고 협력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서로를 위해 마스크의 답답함과 불편함을 감수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으며, 공동체의 위기 속에서도 모두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들의 선택에 따뜻한 박수를 보내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흔들림 없이 자신의 자리와 역할을 묵묵히 지켜내는 평범한 영웅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무너지지 않고 있다. 마스크 대란과 같이 유례없는 혼란 속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모두를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들을 함께하고 있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한 기간 이러한 어려움과 혼란은 계속될 것이다. ‘더불어 숲’을 쓰신 신영복 선생님께서는 배움을 ‘관계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라고 하셨다. 각각의 교과적 지식을 넘어 서로의 관계성을 꿰뚫어 볼 줄 알아가는 것이 배움의 과정이라면, 지금 우리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절실하게 배우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가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지금의 모습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민주 시민으로 어떤 삶의 태도와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 의미 있는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확진자의 동선과 접촉자들을 파악하며 서로의 연결 고리를 찾아가는 힘든 역학조사 과정들을 지켜보며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나와 너는 저마다 한 그루의 나무이지만, 우리는 더불어 함께 큰 숲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거센 바람 속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더불어 숲이 되어 서로를 지키는 것이다. 지금 불고 있는 어려움과 혼란의 바람이 잠잠해져 학교에도 평범한 일상의 평화로움이 다시금 스며들기를 바라면서 4월의 따뜻한 봄바람을 기다려 본다.

강미연 약사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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