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감옥』을 받고
『별들의 감옥』을 받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3.2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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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편으로 책을 받는다. 아는 작가들이 새 책을 펴내면 보내오기도 하고, 전혀 알지 못하는 작가들이 보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도 못하고 안면도 없는 작가가 보낸 책, 『별들의 감옥』이 도착한 것은 일월 중순쯤이다. 제목과 표지가 눈에 띄었다. 책 등에 찍힌, 까만 바탕에 흰 글씨의 책 제목은 강렬했다. 감옥이라는 낱말과 별은 어쩌면 안 어울리는 낱말 같았지만, 호기심 이는 조합이었다.

누군가에게 책을 받는 것은 그 무엇에 견줄 수 없을 만큼 좋다. 모르는 작가에게 받는 경우 그 기쁨은 더 크다. 열심히 글을 쓰고, 그 글을 차곡차곡 엮어 책을 내는 일은 작가로서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내 주소를 썼을 작가의 손길과 마음을 알기에 우편으로 받은 책은 서점에서 산 책, 혹은 출판 기념회에 가서 받은 책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누런 봉투를 뜯고 두툼한 책을 꺼낼 때 훅 끼쳐오는 종이내음은 그 어떤 냄새보다 향기롭다.

소설가가 된 후 처음으로 책을 냈던 그때, 나는 내가 속한 협회원들을 비롯한 이름난 작가 중에 보내고 싶은 이들을 골라 책을 보냈다. 몇몇 책은 주소 불명이나 수취인 거부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우편엽서를 통해 격려를 보낸 대 작가도 있었고, 직접 전화를 걸어 용기를 준 베스트셀러 작가도 있었다. 비록 내 첫 책은 수많은 이들에게 닿지 않았을지라도 계속 글을 쓸 힘을 얻은 것은 이런 피드백 덕분일지도 모른다. 이름난 작가를 비롯해서 뭇 작가에게 무모하지만, 용기를 가지고 보낸 책은 가끔 묘한 형태로 내게 온다. 『별들의 감옥』을 받은 일도 그런 인연의 끝에서 생긴 듯싶다.

일상이 부서지고 마음에 산란이 가득한 요즘,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숫자가 뉴스 화면을 가득 채우고, 타인의 종교 생활에 분노가 일고, 내가 사는 지역의 정보력과 대처 방법에 답답함을 느낀 탓이다. 그런데도 우리 집 군자란은 꽃대를 두 개나 올리고 주홍빛 꽃다발을 선물하고 개발선인장 끝에선 진분홍빛 꽃이 수굿하게 피었다. 봄볕이 가득한 거실, 한쪽에 놓인 책이 눈에 들어온다.

작가 고경숙의 『별들의 감옥』은 여러 개의 단편을 모은 책이다. 한 개의 이야기 꼭지가 끝나갈 무렵 아련함이 묻어나온다. 작가의 연륜에 맞춘 듯한 이야기 얼개가 많다. 내가 겪은 상처가 가장 크고 아프다고 생각하던 내게 그녀의 소설은 또 다른 우리네 역사의 기록처럼 보였다. 시대를 관통하면서 살아온 개인적인 체험들,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시절에 겪은 개인적인 아픔을 켜켜이 쌓아 올린 이야기들이 아리다. 자유와 사상을 매장한, 엄혹한 시절을 살던 여러 선배의 이야기는 고경숙의 기억을 뚫고 내게 다가온다. 흑백사진처럼 낡고 바란 그 시절의 인물들은 형형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고 돌아갔다. 지금 우리가 사는 자유와 다양함은 어쩌면 앞선 그들의 올곧은 행동과 고단함 덕분이리라. 고통을 참으며 아이의 곁을 지킨 아내, 할머니, 언니의 고달픔에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고경숙의 이야기는 오롯이 그녀가 겪은 시절, 지나간 세대의 이야기로 그득하다. 시대의 기록을 남긴 다른 이야기보다 절대로 뒤처지지 않는 힘을 가졌다. 미려한 문장, 극적인 서사는 없을지라도 그녀 아니고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엮어낸 솜씨가 정교하고 세심하다. 뒤로 갈수록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진 까닭이기도 하다. 고단한 일상을 몰아내고 희망의 싹을 틔우기엔 역시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며 고경숙의 글을 마저 읽었다.

언젠가 우리는 또 이맘때의 일을 소설 속에서 만날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의 시대를 잘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소설가의 일이니까 말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잔인한 이천이십 년의 봄, 여기저기에서 생긴 기막힌 일들을 차곡차곡 기억의 숲에 저장해 두리라. 그나저나 우리에게 이런 해괴한 날이 지난 것을 안도하며, 봄을 잊은 시절의 이야기 한 타래 꺼내어 곱씹으며 허허 웃는 날이 어여 왔으면 좋겠다.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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