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들·갈대 사라진 국가정원 샛강
부들·갈대 사라진 국가정원 샛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3.22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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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창궐한 이후에 생겨난 우스갯소리가 있다. 산중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은 역귀(疫鬼)와 무관하다는 것이 첫째 우스개로, ‘백신’이 항상 함께하기 때문이란다. 승려가 일상으로 신는 흰 고무신의 다른 이름이 ‘백(白)신’이다. 사람이나 동물의 특정 질병 혹은 병원체에 후천성 면역을 부여하는 의약품 ‘Vaccine’과 발음이 똑같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다른 우스개 하나는 박장대소할 이야기다. 이야기인즉, 코로나가 연인사이에는 유관하지만 부부사이에는 무관하다는 얘기다. 부부는 연인과는 달리 잘 붙어있지 않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철저히 지키기 때문이란다. 부창부수(夫唱婦隨), 일심동체(一心同體)란 말이 본디 의미를 못 살리고 보잘 것 없어진 느낌이다. 창령(蒼靈=봄의 신)이 아무리 손짓해도 코로나19 때문에 웃음이 사라진 현실에서 한번 웃자고 한 소리다.

오늘도 정해진 시간에 맞춰 태화강국가정원을 찾았다. 사계절 정원의 조류생태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넓은 꽃밭에는 파릇파릇한 새잎이 하루가 다르게 키를 키우고 있다. 한편에서는 빽빽이 자란 꽃모종 솎아내기 작업이 한창이다. 흰뺨검둥오리와 알락오리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고 이랑을 옮겨가면서 짧은 부리로 일손을 거든다. 춘궁기(春窮期)에도 촘촘하게 자란 꽃밭이 그들에게는 푸짐하게 잘 차려진 잔칫상이다.

그들은 매년 일정 기간 꽃밭에다 텐트를 치고 산다. 먹이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 덕에 두 종의 오리 백여 마리의 먹이활동을 가까운 거리에서 자연스레 지켜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태화강국가정원의 매력 중 하나로, 계절적으로 가장 돋보이는 풍경이기도 하다. 정적(靜的)인 분위기의 꽃밭에 오리의 동적(動的)인 움직임이 보태져 동정(動靜)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어울렁 더울렁 함께하는 사회 ‘태화(太和)’를 이루어 가는 셈이다. 매일 이런 광경을 만끽하는 필자야말로 복 받은 울산사람 아니겠는가.

태화강국가정원 샛강의 부들과 갈대를 모두 베어내기 전인 지난주 화요일 오전 아홉 시경, 부들과 갈대를 병풍으로 삼아 사회적 거리를 두고 먹이를 구하는 쇠물닭과 논병아리의 행동을 한참이나 지켜봤다. 쇠물닭, 녀석들은 국가정원의 양념이자 생태습지의 주인이다. 쇠물닭 부부는 수년 전 주민등록을 아예 습지로 옮겼다. 그곳에는 낮과 밤마다 몸을 숨긴 채 잠을 잘 수 있고, 둥우리를 지을 수 있는 부들과 갈대가 있고, 잠자리애벌레, 수초와 같은 먹잇감이 있기 때문이다.

조사 자료를 기록한 야장(野帳=field book)을 살펴보니 쇠물닭은 새끼를 다섯 마리까지 키워낸 훌륭한 부부다. 자식을 독립시키기까지 부부는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새끼 양육 시기에는 성질이 까칠해져 주위에 누구도 얼씬하지 못한다. 지난해, 그 작은 몸집으로 몇 차례나 흰뺨검둥오리에게 죽기 살기로 맞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 행동은 치와와의 앙탈을 보는듯했다. 새끼를 지키려는 어미새의 행동은 사람의 모정, 바로 그것이었다.

쇠물닭의 이마는 기온이 오를수록 붉은색이 진해진다. 제법 멀리서 보아도 흰 꽁지깃 한 쌍을 곧추세워 세력권을 알리는 도요(?搖=꽁지깃을 ‘까딱까딱’ 혹은 폈다 오므렸다를 반복하는 동작) 행동이 눈에 띈다. 간헐적으로 날카로운 경계 소리를 내는 것도 번식기를 맞은 수컷의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논병아리가 같은 갈대밭의 물속을 몇 번 드나들더니 드디어 뭔가를 입에 물었다. 예민한 성질이라 몸을 굽히고 앉아 망원경의 초점을 맞췄다. 미꾸리가 얼떨결에 잡힌 것 같았다. 미꾸리는 아차 싶었는지 논병아리의 뺨을 이리 치고 저리 치다 작은 부리를 힘껏 감았다. 녀석은 미꾸리를 놓치고 되잡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미꾸리도 지쳤는지 축 늘어져 갔다. 논병아리가 짧은 목을 두어 번 추스르자 미꾸리는 다른 세상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던 건 대물 배율이 높은 망원경 덕분이었다. 논병아리는 입가심으로 샛강 물을 한 모금 넘기고는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다. 좌우를 살핀 뒤 의도를 알 수 없는 짧고도 작은 소리를 한번 내고는 갈대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오늘, 샛강을 다시 찾았다. 부들과 갈대를 깔끔하게 베어버린 탓인지 쇠물닭과 논병아리는 더 이상 관찰되지 않았다. 부들과 갈대는 한 대를 베어내면 다른 한 대도 넘어지는 습지식물이다. 마른 부들과 갈대는 아버지, 파란 새순의 부들과 갈대는 아들에 비유된다. 가정에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살다보면 깨닫는다. 아들 같은 부들과 갈대는 자연에 부딪혀본 경험이 없어 작은 바람에도 꺾인다. 묵은 것에 의지해 곧게 자란 부들과 갈대는 쇠물닭, 논병아리가 은신처로 좋아할 뿐 아니라 새순을 쓰러지지 않게 하는 지지대 역할을 한다. 꺾인 부들과 갈대에서 종의 다양성은 관찰되지 않는다. 의식주와 은신처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태화강국가정원만이 갖는 특징을 부각시키려면 발상을 달리하는 창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양손에 삽을 드는 것만이 관리가 아니다. 머리로는 창조적인 정원을 생각하면서 손에는 태화강의 빅 데이터(big data)가 쥐어져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울산 태화강국가정원이 돋보일 수 있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 박사·철새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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