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줄과 ‘사회적 거리 두기’
금줄과 ‘사회적 거리 두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3.1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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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코로나19’라는 질병이 지구적 규모의 재앙을 일으키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3월 들어 점차 확진자가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불안은 지속되고 있다. 한편, 이란과 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어서 크게 우려된다. 세계적으로는 최근 불과 50여 일 만에 2경원에 해당하는 부가 사라졌고, 올림픽 성화도 그리스에서 채화는 되었지만 봉송 과정이 생략된 데다 개최를 미루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국내 자영업의 경우는 IMF 사태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고, 각급 학교 개학 시기를 둘러싼 혼란과 함께 항공사 및 관광 분야는 당장 큰 타격이 나타나는 등 영향은 일파만파다.

신종 바이러스를 둘러싼 미증유의 이 사태가 언제 해결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서 불안은 더 크다. 당장 우리는 마스크 대란으로 5부제를 시행하는 등 불편과 불안도 여전하다. 이런 사정이지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첫째도 둘째도 손 씻기와 같은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또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켜나가는 것이 마스크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런 노력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봉쇄하고, 나아가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다면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아무리 신종 바이러스라고 하더라도 사태가 이처럼 커지고 확산 속도가 빠른 것은 도시화로 인해 사람이 밀집거주하고, 또 고도로 발달한 교통인프라와 지구 규모로 이어진 경제시스템의 영향이 크다.

그런데 의학과 과학이 요즘에 비해 뒤처졌던 옛 시절,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돌림병과 싸웠을까. 그저 신령님을 찾고, 조상님을 찾아서 빌기만 했을까. 아니면 수십 가구씩 소집단으로 모여 살아서 전염병 따위는 걱정도 하지 않았을까.

우리네 조상들의 생활 가운데 질병 예방과 관련된 것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대문에 걸어두는 금줄과 마을 동제를 둘러싼 여러 금기 속에 오늘날의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 있다. 즉, 아이가 태어나면 세 칠, 즉 21일 동안은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는데, 이때 대문간에 걸어두는 ‘금줄’은 집안을 지켜주는 안전장치였다. 이 기간은 산모와 신생아 모두 면역력이 떨어져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기 때문에 가까운 가족 이외에는 집안 출입을 못하게 했다. 금줄은 부정을 피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장치였던 셈이다. 금줄은 왼 새끼를 꼬아서 솔가지와 댓가지, 그리고 숯을 끼웠는데 아들이 태어나면 고추를 매달기도 했다.

마을 단위 동제에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있었다. 과거 우리나라 모든 마을에서는 동제를 지냈다. 모시는 신이나 동제의 명칭은 달라도 모든 주민이 한마음이 되어 지속적으로 동제를 지내온 것은 마을 제당에 모신 그 신이 마을 주민의 건강과 재산을 지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동제의 과정 속에 ‘사회적 거리 두기’는 물론 소독을 비롯한 방역 활동도 들어있었다는 점이다.

보통 동제는 마을회의에서 선정된 제관에 의해 진행되는데, 제관 선발 절차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제관이 되려면 그 마을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고, 납세 실적이 있는 남자 어른이어야 했다. 또한 지난 1년간 상이나 출산 등이 없고 부정한 곳의 출입 역시 없어야 했다. 제관이 된 후에도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정갈하게 하는데, 보통 동제 1주일 전부터 재계가 시작되면 집 앞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잡인이나 부정한 것의 출입을 금했다. 물론 매일 냉수에 목욕을 해서 자신의 몸도 깨끗이 했다. 동제 당일이 되면 술, 담배, 고기, 생선을 입에 대지 않고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손톱을 깎은 다음 새 의복으로 갈아입었다. 마을 주민들도 동제 날에는 각자 근신하고 분뇨 반출, 개 도살, 개고기 먹는 일을 삼갔다. 모두 철저한 사회적 거리 두기이자 방역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제수는 동제 전날 시장에서 가장 좋은 것을 사 오되 오고가는 길에 타인과 말을 섞는 것도 삼갔으며 물건값을 흥정하는 것도 금기시했다. 제수를 조리하는 곳도 금줄이 처져 부정한 것이 들어올 수 없는 제관의 집이었다. 공동우물물을 사용할 경우는 우물에도 금줄을 친 다음 동제 날 가장 일찍 맑은 물을 길어다 두는 등 부정하고 불결한 것을 피했다. 마을을 지키고자하는 조상들의 철두철미한 모습이 읽혀진다.

사실, 전염성이 있는 질병은 그 매개체가 세균이건 바이러스이건 간에 피하는 것이 상책이며, 이왕 피할 때는 확실하게 해야 한다. 현대의학도 과학도 모르던 시대를 살던 우리 조상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몸을 깨끗이 해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고 마을을 지켰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라고 다를 것은 없어 보인다. 사회적 거리라는 금줄을 치고, 스스로 씻는 것이 상책 중의 상책이다.

강혜경 울산 중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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